길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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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前 제주도문인협회장/시인

낙엽이 길가에 나뒹구는 걸 보면 어느새 가을이 깊었음을 느낀다. 저녁 무렵, 바다를 끼고 있는 나의 집 정원에도 스산한 바람이 인다. 이럴 때 문득 생각나는 한편의 영화가 있다. 50년 전 상영됐던 이탈리아 영화 ‘길(La Strada)’이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주인공 잔파노(안소니 퀸)가 그가 버린 여인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애잔한 트럼펫 연주소리를 들으며 참회의 눈물로 오열하던 마지막 장면이 가을저녁 해풍과 함께 짠하게 다가온다.

 

길에 관한 영화는 국내에도 있다. 황석영의 단편 ‘삼포로 가는 길’이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고향을 상실한 세 사람, 즉 두 사람의 부랑인과 한 사람의 창녀가 각자의 고향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따뜻한 인간애와 연대의식으로 연출되는 작품이다. 눈 오는 들길을 달려 70년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 해쳐져 사라져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음은 무슨 의미일까.

 

길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미국의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노래한 시 ‘가지 않은 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느 가을 날 숲 속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 망설이던 그가,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했다, 그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선택한 길을 가면서 그는 줄 곧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회상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두 길, 오로지 하나의 길밖에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와 한계를 노래한 시를 읽고 있노라면 인간의 내면적 삶의 의미와 함께 새삼 내가 선택한 삶의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대중가요 ‘진주라 천리길’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립다/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 번…’을 노래한 김소월님의 ‘가는 길’이 되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의 ‘제3의 길’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헤매어 다닌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길은 길에서 찾아야 한다.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을 찾으면 그건 길이 아니다. 물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을 만들기 위해서도 길은 필요하다. 지구의 동과 서를 잇는 실크로드가 그러했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가 마지막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인 ‘십자가의 길’이 그러했고 핍박 받는 이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사랑, 나눔의 실천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요즘 한참 제주 관광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의 길, ‘올레길’은 어떤 길인가.

 

‘올레’는 제주적으로 표현하면 통상 큰 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을 길, 이웃과 이웃을 잇는 골목 등을 이름이다. 이 좁은 골목길은 제주의 역사다. 제주인의 정신이며 혼이 깃든 길이다. 정과 사랑이 이웃하는 길이다. 올레가 없으면 아픔을 나눌 곳도, 사랑을 주거나 받을 곳도, 인정을 바느질 할 곳도 없다. 돌과 바람이 많은 제주 올레길, 그곳에서 제주 인들은 태어났고, 돌 바퀴가 굴러가듯 그 골목길에서 구르며 자랐고, 그 골목길에서 꿈을 꾸고 그 골목길에서 어른이 되고 제주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만큼 제주 인에게 올레를 빼면 제주인의 고향은 없다.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은 제주의 올레 길을 걷는다. 그들이 지나는 올레 길에서 그들이 느끼고 마음에 담아가는 올레 길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본디 올레는 저만치 두고 경관 좋은 코스만 골라 다니며 혹여 함부로 버린 쓰레기로 올레가 갖는 살가움에 상처만 입히고 가는 건 아닌지. 그들에게 제주인의 정신과 올레 길의 정서를 심어줄 방도는 없는지, 관광객 천만 명을 꿈꾸는 우리는 지금 그걸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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