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떠나야 좋을까
어디로 떠나야 좋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오을식 소설가/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아버지 산소를 다녀오는 길이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다리는 무거웠고 가슴은 답답했다. 산소 위로 새 도로가 뚫리게 되어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 한다는 통보가 스트레스를 준 탓이었다.
당장 이장할 자리를 물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여기 저기 둘러봐도 산소로 쓸 만한 땅은 이미 수많은 봉분들로 만원인데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고 달려가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높은 지가가 벽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예 화장을 해서 납골당 안치나 수목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이 행여 불효의 연장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집안 어른들의 표정도 궁금해서 쉬 결정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이 스산해져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휴대폰을 꺼내 아들과 딸에게 같은 문자를 날렸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 묘지에다 매장을 할래, 아니면 화장을 할래?’
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왔다. ‘음… 매장이 좋지 않을까요?’. ‘화장해서 수목장하면 좋을 것 같은데…’

 

순간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묻기는 그렇게 물었으되, 아이들의 입에서 ‘아빠가 왜 죽어요.’ 또는 ‘아빠는 슬프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쯤의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두 아이의 솔직한 답변에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면서 바짝 약이 올랐다.

 

죽을 힘을 다해서 낳아 길러놨더니만 이놈들이 나 죽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고얀 느낌이 잔뜩 밀려들었던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노려보며, 이놈들 내가 빨리 죽나봐라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현재의 내 입장 때문인지 눈길이 가는 곳마다 묘지만 보인다. 그런데 곳곳에 묘지가 정말 많다.

 

접근이 용이한 산자락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산은 말벌 떼의 독침 세례를 받은 것처럼 전체가 볼록볼록 부어 있다.
심지어 밭이며 주택 옆에도 들어선 곳이 있고, 일부 산소는 지나치게 터가 넓은데다 다양한 석물과 고급 조경수로 치장해서 저게 혹시 공원이 아닌가 싶게 호화롭다.

 

이렇게 전국에 산재한 묘는 약 2000만기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그 넓이의 합이 이미 국토의 1%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직접 나와서 보니 짐작보다 심각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않아 전 국토의 묘지화 될 수 있다는 시중의 우려가, 입에 바른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우리가 살면서 한 사람이 누리는 평균 주거 공간은 약 5평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죽으면 그보다 5배나 훌쩍 늘어나 약 19평 정도의 공간을 차지한다고 하니, 이게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인지 다시금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우리의 산야는 우리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간이역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갈하게 이용하고 깨끗하게 떠나야 뒤에 올 후손들이 행복하다.

 

자연환경의 보존, 국토자원의 효율적인 활용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그리고 벌초로 인한 인력과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측면에서도 묘지를 이용한 장례문화의 개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나저나 곧 집을 잃게 될 아버지를 어디에 어떻게 모셔야 불효가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눈길이 자꾸 앙상해진 나무의 우듬지에 올라앉은 까치집으로 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