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제는 세계외교의 부분으로 냉정하게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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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혁 전 국정원 1차장
▲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본사와의 신년 대담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고기철 기자>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세밑에 터져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남북관계는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

취약한 김정은 3대 세습체제 개막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불안전성을 높이고 있어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의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 역시 급변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외교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6자 회담 한국측 초대 수석대표를 역임한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62)과 현창국 제주일보 편집국장이 대담을 갖고 남북관계의 현안과 과제, 전망을 나눴다.

이 전 국정원 1차장은 “북한은 붕괴하지 않고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점을 전제로 냉정하게 남북관계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의 급격한 남북관계 기조 변화는 안된다”며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국제정치학적 상황을 고려해 통일 문제를 남북한간의 국내 문제가 아닌 세계외교의 한 부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창국 국장=참여정부때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내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에 대한 소회는?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최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은 가장 중요한 아젠다(Agenda·핵심 과제)였고 과연 추측한대로 오래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김정일의 사망에 따라 김정은 세습정권이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북한 내분 우려, 이에 따른 한반도의 정세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매우 깊다.

김정일 사망에 따른 우리 정보기관의 정보력 문제가 큰 이슈로 다가왔는데 이는 우리에게는 불안의 요소가 되고 북한에게는 자신의 정보관리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북한은 이번 일을 통해 자신들의 정보관리와 보안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현=북한의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됐다고 보는지?

이=권력 속성상 북한 내부에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많고 권력쟁탈전에 대한 우려가 높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중국이 북한 내부 정변이 발생해 불안해지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끝까지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있는데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권력의 속성을 고려한 생각이고 구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비교적 견고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됐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김정일 사망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중국이 김정은 체재를 전략적으로 활용도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고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인데?

올해 펴낸 ‘북한은 현실이다’라는 저서에서 세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그런데 책을 출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일 사망으로 이 가설은 현실이 됐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우리로서는 장기 분단인 현 상태가 영구 분단으로 이어질 수 있어 통일과 멀어지는 것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북한 정권의 안정을 가져오고 이는 분단 상태가 고착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우리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현=중국의 경우 내년에 지도부가 교체되는데 이와 관련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연관성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학에 있어 우리의 선택은?

이=중국 후진타오와 북한 김정일이 10년 파트너를 한 것처럼 시진핑과 김정은이 양국의 지도부로 북·중 관계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북·중 관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한 한·중 관계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중 관계를 좋게 하려면 남·북한 관계가 좋아야 한다.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한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럴 경우 한·미동맹의 의미가 퇴색해지는 것이어서 정치권과 외교가의 방향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와 북한체제 유지를 고려한다면 한·미, 한·일의 전략적 관계 설정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외교적 움직임은?

이=과거 일본과 관계가 좋을 때는 한·미·일 3자 협의회를 통해 한반도 위기관리와 북핵 문제를 논의했는데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돼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동북아 안보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한·일 양국이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판단하고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러시아의 경우 중국과 비교했을 때 북한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많지 않다고 본다. 러시아는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불편해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치·외교·안보 환경의 지형변화가 예상되는 이때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현재 우리 외교부는 존재감이 사라져 버렸다.


현=김정일 사후 우리 정부의 대북 스탠스와 대북정책 변화 움직임은?

이=미국은 남북통일을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 또한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통일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 우리나라의 정책방향(스탠스)을 잡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앞으로 대통령은 한반도 분단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한 분단문제, 안보문제를 고민하고 당당하게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분단 문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지도자는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동시에 깊은 정치철학과 뚜렷한 역사인식으로 무장된 이여야 한다.

저는 남북관계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진단해야 이에 따른 처방이 뒤따르는 것이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한·중 관계 복원과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며 냉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통일외교 전략이 수립이 필요하다.


현=남북관계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북한 지도부의 교체에 따라 우리는 내년에 어떤 기조로 임해야 되는지?

이=김정은도 생존을 위해 한국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도 남·북한 갈등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리더십 변화가 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에 변화를 줄 것인가가 문제인데 인적 변화가 체제 변화를 가져온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생기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는 점은 감안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북한 지도부의 교체가 이뤄졌다고 내년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김정일 사망으로 대북정책의 기조가 갑자기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4년간의 대북정책 기조를 뒤엎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고 이는 차기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현=MB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이=이명박 정부 초기에 권력 상층부에서는 김정일이 3년 안에 죽고 5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갖고 있었다. 북한을 옥죄면 김정일 사망 이후 민란이 일어나 통일이 온다는 것이 사실상의 권력 상층부의 묵계였다.

지금 김정일이 사망했는데 2년 안에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판단할 수 없게 됐다. 애초에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과 판단이 잘못됐고 지나친 낙관주의, 장밋빛 미래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정권 초기의 판단에 따르면 김정일 사망 이후 세습제는 안된다, 북한주민이 일어나야 한다며 우리 정부가 북한을 흔들어야 되는데 지금 그러한 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보면 당초의 판단이 비현실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초 대북정책 방향이 전 정권과 뭐든지 반대로(Anything But)하는 것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대북 인적교류가 끊기면서 정보망 단절로 대북 정보를 얻는데 실패한 것들이 이번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우리의 정보부재 원인을 분석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김정일 사망에 따른 정보망 부재도 문제지만 그것을 공개하는 것도 문제라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김정일 사망 관련 정보와 관련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NCND)를 취했다. 정보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정부의 스탠스(stance)가 아쉽다.


현=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나라의 대응은?

이=중국은 과거 북한이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우라늄시설을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과 중국은 북한 핵 포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하더라도 중국이 핵을 가진 7000만의 한반도 통일국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핵 포기는 통일시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일부에서 우리나라의 핵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국제적 규범을 따르는 나라로 핵확산을 방지한다는 것이 현재 국제적 규범이다. 공식적으로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외에 핵을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핵주권 문제는 미·일과의 관계도 걸린 문제여서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기 전까지 핵통제를 잘해야 되고 이런 부분에서 중국이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 주독일 대사, 국정원 1차장(해외 담당)을 지낸 베테랑 외교관이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9회 외무고시(1975년)에 합격해 외교계에 입문했다. 대통령 외교통상비서관과 외교통상부 구주국장, 주유고 대사, 외교통상부 차관보, 주 독일대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냈다.

지난 9월부터 매주 토요일 제주를 찾아 대학생 글로벌리더 교육 비영리단체인 휴먼리소스아카데미(HRA)에서 고전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통일독일과의 대화’(2006년), ‘북한은 현실이다’(2011)의 저서를 펴낸 그는 현재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고 통일문제와 분단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저서를 준비 중이다.

대담 현창국 제주일보 편집국장

정리 현봉철 기자 hbc@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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