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돔의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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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릿배 해광호 선원들 가파도와 마라도 바다 오가며 자리잡이 한창
25일 오전 5시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 선원 9명을 태운 10t급 연안복합어선 해광호(선장 이경필)가 40분 동안 달리며 물살을 갈랐다.

가파도 인근 등대섬 ‘넙대(광포탄)’에 이르자 닻을 내렸다. 넙대는 ‘여(암초)’로 자리돔의 서식처다.

선원들이 ‘뗀마’라고 부르는 작은 보트 2척을 배에서 부린 후 네모난 그물의 양 귀퉁이를 잡아 바다에 펼쳤다. 전통 고깃배인 테우에서 쓰던 들망(사둘) 어법이었다.

자리돔은 암초 지대에 살기 때문에 그물로 훑거나 끌어당길 수 없다. 그랬다간 바로 찢겨 나간다. 그물을 넓게 편 뒤 자리돔이 지나갈 때를 기다려 그대로 떠서 들어 올려야 한다.

이경필 선장은 “조상들이 들망 어업을 한 이유가 있다. 제주 바다는 육지처럼 평평한 뻘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물 자루를 끌어 다니는 저인망 어선이 자리를 잡았다면 진작에 씨가 말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은 밀물이 높은 사리여서 물때가 좋지 않았다. 바다에 평평하게 펼친 그물도 암초에 걸려 2번이나 찢어졌다. 선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터진 곳을 꿰맸다.

방향타를 돌려 마라도 바다로 나갔다. 이번엔 선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2차례 그물질에 100㎏ 가량의 자리돔이 잡혔다. 낮 12시가 되자 선원들은 늦은 ‘아점’을 먹고 귀항을 서둘렀다.

26년째 자릿배를 탔다는 김선찬씨는 “마라도와 가파도 바다는 오후에는 물살이 세기 때문에 자리를 잡기 힘든데 더 잡아봐야 팔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슬포 자릿배는 새벽에 나간 뒤 낮이 되면 조업을 끝낸다.

며칠 전 자리돔 값은 크게 떨어져 자릿배들은 나흘간 조업을 중단한 바 있다. 출어 경비 30만원도 건지지 못해서다.

물때가 안 좋은 이날은 해광호를 비롯해 20여 척의 출어선마다 어획량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모슬포항에 팔짝 뛰는 싱싱한 자리돔을 내려놓자 횟집 사장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처음엔 한 상자(10㎏)에 8만원을 줬던 업주들은 자리돔이 많지 않은 것을 보고 오만원권 지폐 2장을 쭉 내밀며 자기에게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경필 선장은 “자리를 비롯해 모든 물고기는 물살이 센 곳에 살아야 맛이 좋다. 모슬포 자리는 잔자리와 비교해 ‘대자리’라고 부른다. 살이 잘 오르고 지방이 있어 더욱 고소하다”며 초된장에 찍은 자리회를 미나리에 싸서 내 입 속에 넣어 주었다.

바야흐로 자리돔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주 최고의 명물이자 별미인 자리돔은 물회와 강회, 구이로 겨우내 깔깔했던 입맛을 돌려준다. 더구나 자리젓은 제주인의 밥상에서 가장 흔한 반찬이다.

자리돔은 지역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해류 세기와 먹이 종류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보목리 사람들은 모슬포에 가서 자리물회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다른 마을에 가서 자기 마을 자리돔 맛이 좋다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싸움이 날 정도라고 한다.

타향에 나간 도민들은 재피와 오이, 마늘·파를 넣고 빙초산 몇 방울 떨어뜨린 자리물회 생각에 침을 삼킨다고 한다.

매콤하고 시원한 자리물회의 계절,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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