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주마가편(走馬加鞭) 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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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가편(走馬加鞭)’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달리고 있는 말에 채찍을 가하여 더욱 달리는데 매진할 것을 부추긴다는 뜻으로 매우 일을 서두른다는 뜻이다.

때로는 일이 몹시 급하다면 채찍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채찍을 가한다면 말은 자신이 열심히 뛰거나 열심히 뛰지 않거나 얻어맞기는 매일반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중 멍청한 말은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열심히 뛰다가 죽을 것이요. 좀 똑똑한 말은 맞아도 뛰지 않고 슬슬 걷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수(騎手)의 역할은 중요하다. 말이 열심히 달릴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때로는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끔 매질도 가해야 한다.

사랑이나 매 둘 중 하나로만 일관된 기수는 경주에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집단이라도 열심히 일하는 자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달리는 말과 노는 말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수를 잘못만나면 일을 독려하는 매는 균등히 혹은 오히려 달리는 말에게 더욱 강하게 주어진다.

어떤 조직에서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은 자주 윗사람에게 불려나가 일감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일을 빨리 처리하는 직원에게는 더 많은 일감이 따라 다닌다.

우리나라 조직의 특성상 그리고 만연된 평등주의의 특성상 이런 직원에게 특별대우를 해주기가 어렵다.

통상적으로는 승진을 빨리 시켜준다거나 해외출장의 특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따지고 보면 이런 당근은 조직생활 30년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가로 보기에는 너무 적을 수도 있다.

결국 조직의 문화와 상벌의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직원은 편안한 삶(!)을 택할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의 조직은 ‘선점의 원칙’이 적용된다. 먼저 입사하여 자리를 점유한 사람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설령 어떤 공정한 사람이 제도개선의 안을 낸다고 하더라도 선임자에 대한 압박이나 후임자에 대한 혜택은 각종 위원회에서 잘려나가며 선임자에 대한 혜택과 후임자에 대한 압박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것이 ‘개선’을 의도했으나 ‘개악’으로 끝나고 마는 행정의 사례이다.

물론 너무도 다양한 그럴듯한 논리가 있다.

연장자 우대의 원칙도 있고 사회보장의 차원에서 능력없는 자를 직장에 붙여주는 논리도 있다.

조직이 사회보장도 담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능하고 게으른 것들이 모여서 열심히 사는 직원의 흠만 잡으려 하면 열심히 사는 직원은 당할 수밖에 없다.

한쪽은 싸우는데 전념하고 한쪽은 일하는데 전념하는데 어떻게 당하겠는가?

결국 조직이 이를 보호해줄 수 없다면 결국 공멸의 시나리오로 갈 수 밖에 없다. 논리가 부족하면 마지막으로 ‘사가지 없음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 사실 뛰느라고 바쁜 말들은 사가지 없을 틈도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 조직은 이상한 특성이 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리고 많은 월급을 받아가는 사람이 더 편안하고 낮은 자리에 앉아서 월급 적게 받는 사람이 더 수고롭다. 정규직원보다 임시직원이 일을 많이 하고 조직의 위계보다 나이가 더 중요한 계급장이고 채찍은 항상 책임이 적은 사람에게 떨어진다.

오늘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어떤 조직에서 뛰는 말들이 뛰다가 지쳐 죽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를 가해도 걷게 되거나 매에 맞아 죽는 것을 걱정한다.<정범진 제주대 교수·에너지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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