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터 등 한 서린 유적지 방치로 아픔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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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주요 유적 19곳 중 3곳만 사업 완료(29회)
   
(사진=다랑쉬굴 유물) 다랑쉬굴에서는 솥과 그릇, 수저, 항아리, 구덕, 횃불통 등 102점이 유물이 발견됐다. 1948년 토벌대가 짚에 불을 붙여 굴속에 집어넣으면서 이곳에 있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최근 영화 ‘지슬’이 국내 독립영화 사상 최다 관객인 13만명을 돌파하면서 4·3의 세계화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이 영화는 1948년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동굴)’에서 주민 100여 명이 2개월 동안 숨어 지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지슬(감자)로 끼니를 연명하며 은신했던 주민들은 결국 토벌대에 발각돼 희생됐다.

4·3 당시 중산간 마을 대부분 동광리와 비슷한 비극을 겪은 가운데 6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4·3 주요 유적들은 원형을 잃거나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1992년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에는 9살 어린이부터 51살 부녀자까지 11명의 유해가 고스란히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4·3진상규명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다랑쉬굴의 참상은 4·3의 진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상징이나 유적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4·3연구소가 20년 만에 재발굴을 실시한 결과, 굴 입구는 큰 바위로 봉쇄된 가운에 내부에 있던 무쇠솥과 숟가락, 그릇을 비롯해 농기구 등 유물들이 부식되면서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조천읍 선흘리 주민들이 숨어 지내다 40여 명이 희생당한 ‘목시물굴’은 창살로 동굴 입구를 막은 채 방치되고 있다.

1948년 11월 중산간 마을 소개 작전이 시작됐지만 일부 주민들은 가축과 가을걷이한 곡식을 두고 갈 수 없어 천연동굴인 ‘목시물굴’을 피난처로 삼았다.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희생됐다.

지금도 굴속에는 그릇과 숟가락, 호롱불, 고무신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비교해 조천읍 북촌리 주민 433명이 희생된 ‘너븐숭이’ 공원은 애기무덤을 보존하면서 기념관과 전시실, 문학기념비 등이 세워지면서 해마다 많은 학생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유적지를 복원하고 활용하면서 4·3역사 교육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편 1949년 봄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무장대와 주민을 분리시킨 후 토벌한다는 작전에 따라 중산간 마을에는 돌담으로 성을 쌓은 전략촌이 조성됐다.

대표적인 전략촌인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 4·3성터는 흔적이 잘 남아 있는 성터로 2009년 복원사업을 통해 성곽 축성 및 보수, 지서, 초소, 함바집 등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선흘리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쌓은 성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함바집에 들어가 살았다. 젊은 남자들은 이미 죽거나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보초는 여성과 노인들의 몫이 됐다.

무장대는 식량 확보와 정치 선전을 위해 1950년 가을까지 이 성을 몇 차례 습격했다.

1954년 통행제한이 풀리면서 주민들은 전략촌을 떠났고, 일부 주민들은 성안에 정착해 오늘날 낙선동을 이뤘다.

또 막바지 4·3토벌작전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경찰 주둔소는 40여 개가 있었으나 현재 시오름주둔소 등 3곳만이 원형이 남아 있는 상태다.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시오름주둔소는 전체 둘레가 75m, 높이 2m, 폭 1m로 내성과 외성이 있는 등 겹담으로 축조됐다.

그런데 복원과 정비가 되지 않으면서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는 상태다.

주둔소는 한라산에 숨은 잔여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설치됐고,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풀리면서 4·3이 종식될 때까지 유지됐다.

이와 관련, 4·3연구소가 도내 전 지역을 대상으로 4·3유적지를 전수 조사한 결과 597곳이 확인됐다. 앞으로도 체계적인 조사와 발굴, 보전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05년 우선 복원·정비할 유적 19곳을 선정했지만 지금까지 정비작업이 완료된 유적은 북촌 너븐숭이, 낙성동 4·3성터, 섯알오름 학살터 등 3곳에 불과하다.

정비 대상은 학살터와 잃어버린마을, 피난처, 은신처(무장대), 주둔소, 성터 등이지만 2010년부터 정부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유적지 대부분은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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