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 따뜻한 온정으로 끓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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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4일까지 도내 4곳서 오후 2~9시까지 모금 진행
‘딸랑, 딸랑~’ 해마다 12월이 되면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12일 오후 제주시청 맞은편 대학로. 유정훈 구세군 사관이 종을 흔들자 ‘나눔의 종소리’가 도심 거리에 울려 퍼졌다. 2시간 뒤 텅 빈 냄비에 온정이 차면서 세밑 추위가 녹아들었다.

유 사관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까지 실시하는 모금에 더 많은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금활동은 제주시 대학로와 중앙로 현대약국, 서귀포시 동명백화점, 이마트 앞 등 4곳에서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얼굴 없는 천사’는 어디로 갔을까?

2003년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낀 40대 신사가 지갑을 열더니 100만원권 수표를 넣기 시작한 이래 2004년과 2005년에는 300만원을 기부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2007년까지 5년 동안 거금을 넣고는 곧바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 구세군 사관들은 고맙다는 인사는 물론 이름도 묻지 못했다. 그런 그가 2008년부터 자취를 감췄다.

유 사관은 “다른 지방에 이사를 갔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제2의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나서 따뜻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선냄비는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최소 2000원의 소액도 기부할 수 있도록 ‘디지털 자선냄비’가 도입했다. 카드 사용이 일상화된 요즘 세태를 반영해 기부 문화도 변한 것이다.

자선냄비는 변화를 거듭했다. 2004년 독일의 주방용품 업체 ‘휘슬러’가 강철 냄비를 기증하면서 낡은 양철냄비는 사라졌다.

동전의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수천번의 실험을 거치면서 윗면보다 바닥이 넓은 지금의 자선냄비가 탄생했다.

자선냄비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명한 일화는 길에서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받은 스님이 시주를 모두 자선냄비에 넣고 간 일이다.

이처럼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어서면서 구세군은 전 세계 126개국에 있다.

구세군은 영국 감리교 개혁파 윌리엄·캐서린 부부가 런던에서 빈민 선교를 위해 1865년 출범했다. 산업혁명으로 빈곤에 내몰린 실직자와 노숙인 등을 돕기 위해서다.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배가 난파됐을 때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조지프 맥피 구세군 사관이 부둣가에 큰 솥을 걸어두고 돈을 모금하면서 유래해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확산된 모금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이 명동에 자선냄비를 설치한 게 처음이다.

앞서 1908년 영국 선교사 로버트 호가트가 10여 명의 사관을 데리고 들어와 첫 구세군 사령관을 맡았다.

구세군은 국가별 사령관이 있는 군대식 체제로 편제된다. 부위→정위→참령→부정령→정령→부장→대장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계급명은 구한말 군대 계급에서 따왔다.

올해 구세군의 모금 목표액은 55억원. 제주지역은 3000만원으로 무난히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목표액이 적은 것은 도민들이 그동안 자선냄비에 대한 온정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유 사관은 “연말 자선냄비뿐 아니라 2014년에는 1년 내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아가는 해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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