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의 발상지로 제주사람들에게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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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성혈
   

‘삼성혈(三姓穴)’은 탐라국의 발상지로 제주사람에게는 매우 특별한 장소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은 이름처럼 세 명의 신인(神人)인 고을나와 양을나, 부을나가 출현한 ‘品’자 모양의 3개의 구멍을 말한다.

 

이들 세 신인은 제주의 첫 주민임과 동시에 전통적인 토착성씨인 고(高), 양(梁), 부(夫) 등의 세 성씨들이 각각 받들어 모시는 시조이기도 하다.

 

옛 문헌인 동문선(東文選)과 영주지(瀛州誌),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세 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가 동해의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연혼포’에서 맞이해 각각 배필로 삼았다.

 

이후 세 신인은 제 각기 생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에 각각 도읍을 정해 제주를 삼도(三都)로 분할, 부족국가를 세우고 산업을 일으켜 융성했다.

 

이 때 활을 쏘았던 장소가 사시장올악(射矢長兀岳)이며, 활이 박혔던 돌을 모아 보존한 것이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三射石)이다.

 

삼성 신화는 비록 신화이기는 하나, 원초적인 제주사회의 형성과 변천 과정, 문화 배경 등을 담고 있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삼성혈은 바로 이 삼성 신화의 주인공인 세 신인이 태어난 탐라국의 발상지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조선시대 이래 삼성혈은 받들어져 왔다. 1526년(중종 21년) 제주목사 이수동은 표단(標壇)과 홍문(紅門) 세워 삼성의 후예와 그 밖에 제주사람들로 하여금 세 신인에 대한 제사를 지내게 했다. 1698년(숙종 24년)에는 삼을나묘(三乙那廟)를 세워 위패를 봉안했다. 이 삼을나묘가 지금의 삼성전이다.

 

이후 삼성전은 이전과 헐림 및 재건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1910년 다시 세워졌으며, 현재 건물은 1971년 낡은 건물을 해체한 후 다시 건조한 것이다.

 

이 밖에도 1772년(영조 48년) 제전(祭田)을 마련해 향청(鄕廳)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1827년(순조 27년)과 1849년(헌종)에는 각각 전사청과 숭보당 등도 세웠다.

 

현재 삼성혈 경내에는 삼을나의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과 분향을 하는 장소인 삼성문, 뛰어난 선비를 두어 면학을 하던 재사(齋舍)인 숭보당, 재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장소인 전사청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숭보당을 중심으로 서쪽 끝에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전시관에는 삼성혈 신화에 대한 모형도와 함께 도지정문화재인 홍화각, 홍화각기, 도유형문화재 12호인 급제선생안과 고문서, 제기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전시관 내 따로 마련된 영상실에서는 제주 개벽신화인 탐라를 창시한 세 신인의 용출(湧出‧穴에서 태어남)로부터 탐라국으로 발전해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화적,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과 삼성혈 관련 유적의 현지 모습을 촬영한 영상물을 함께 방영하고 있다.

강민성 기자 kangm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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