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원효대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신라시대의 원효대사는 이 나라 대중불교를 자리잡게 한 한국불교가 낳은 성사(聖師)라고 한다.

대승불교의 건설자인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나 중국불교를 새롭게 연 천태지자대사에 비견되기도 한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긴 사상가이기도 하다.

삼국통일을 전후해 소용돌이치는 한 시대를 살았던 원효대사는 당시 대부분 승려들이 왕실과 귀족의 존경을 받으며 귀족처럼 생활했던 것과는 달리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무지한 백성들에게 서민불교를 전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다.

그의 학문적 기초이자 종교적 실천의 기초는 ‘염정불이 진속일여(染淨不二 眞俗一如)’였다.

세상에 더럽고 깨끗함이 둘이 아니고 하나요, 진리의 길과 세속의 길이 본래 같다는 게다.

그래서인가.
원효는 태종 무열왕 때 과부가 된 요석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고 그 유명한 ‘설총’을 낳은 뒤 스스로 승복을 벗어던져 파계하고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자처하며 다니기도 했다.

어쩌면 기인 같은 행동을 보인 그가 ‘모든 세상의 이치는 자기 마음에 달려 있다’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계기 또한 유별나다 하겠다.

34세 때 의상과 함께 입당 유학을 시도했던 그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갔다가 순라군에게 잡혀 뜻을 이루지 못했고, 45세 때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해 가기 위해 백제 땅 당주계(唐州界)로 향하게 된다.

항구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깔리고 비바람이 쳐 한 움막 같은 데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

한밤중에 잠이 깬 원효는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표주박 같은 데 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주 맛있게 물을 먹고 갈증을 해소한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원효는 그 움막이 집이 아니라 오래된 무덤이고 자기가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게 된다.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생각에 뒤늦게 구역질을 하던 원효는 그 찰나에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음을 대오(大悟)한 그는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신라로 돌아왔다 한다.

요즘 우리 주변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나 그들이 인생에서 실패하는 것은 실제로 주어진 환경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비관하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지고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을 갖는다면 인생에서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