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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부모교육 강사

 그날은 아이 기분이 다른 때보다 더 산만해 보였다. 오자마자 이런저런 말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마침 그 전 주에 새로 온 아이가 이 아이의 친구인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친구보다 뭔가 앞선 것이 있다면 자기가 우월하다고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이 아이도 자기가 이곳에 먼저 왔다는 것이 마치 무슨 기득권이라도 되는 듯 들떠 보인다. 활동할 시간이 되어서 준비를 시키는데 갑자기 아이가 일어서더니 집에 가겠다고 한다. 지난번에도 몇 번 이랬던 적이 있어서 못들은 척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그냥 가버린 모양이다.

 

지난번 새로 온 아이가 눈이 동그래진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칫하면 이 아이에게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불편한 1시간이 될 수 있다.

 

어떤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활동을 진행했다.

 

“선생님, 어떡해요?” “쟤네 엄마한테 전화하실 거예요?” 아이들이 걱정한다.

 

“너희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선생님이 알아서 해결할게.”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그 날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은 다른 날보다 분위기가 더 진지했고 집중도 잘 했다.
다음 주에 그 아이가 왔다. 아무런 말이 없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맞았다.

 

그런데 다른 날보다 말 수도 적고 활동도 열심히 한다. 수업한 부분에 대해 확인받는 시간에 “와! 이렇게 잘 했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 마디 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도영아, 선생님한테 할 말 없니?” 하고 물었다. 아까부터 칭찬받고 머쓱하던 아이가 “선생님, 죄송해요. 사실 오자마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알아. 우린 마음으로 통하잖아. 그렇지?” 아이가 빙그레 웃는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아이가 일주일 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그리고 나를 만나러 불편한 마음으로 온 것 자체가 이미 벌인 것을.

 

아마 수업 도중에 나간 아이는 선생님이 나와서 자기를 잡아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한테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인정받는 셈이니까(이때 나가서 아이를 붙잡으면 분위기는 아이 쪽으로 기운다). 그런데 잡지도 않고 놔두니까 그 다음은 부모님께 전화하는 차례 아닐까? 불안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전화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나를 만나러 오면서는 또 얼마나 불편한 마음이었을까? 가면 선생님이 왜 그냥 갔느냐고 엄청 잔소리할 텐데. 친구들 앞에서 잔소리를 듣고 싶은 아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둘 다에게 이익인 방법은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그랬더니 아이가 더 좋아졌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 아이는 예전보다 훨씬 더 의젓한 모습으로 내 곁에 온다. 우린 마음이 통하는 사이니까. 아이들은 날마다 나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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