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하나하나에 '제주 사수'의 염원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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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재발견 35] 제주도 기념물 49호 환해장성
 
   
 

제주에도 만리장성이 있으니 바로 환해장성이다. 김상헌의 ‘남사록’에 환해장성은 ‘탐라의 만리장성’이라고 기록돼 있다.

 

제주가 섬인 만큼 예로부터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방어시설을 구축했고, 그 중 해안선을 따라 3백리(약 120㎞)에 걸쳐 제주를 빙 둘러싸고 구축된 성이 환해장성이다.

 

환해장성이란 명칭은 김석익이 1918년 편찬한 ‘탐라기년’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고, ‘고장성(古長城)’이나 ‘장성(長城)’, ‘해안성담’ 등은 환해장성의 다른 이름이다.

 

환해장성 축조는 고려 때 삼별초가 진도를 거점 삼아 대몽항쟁을 벌일 때 시작됐다.

 

1270년(원종11) 전라남도 진도 용장성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가 제주에 입성할 것이란 소식을 입수한 관군(官軍)이 먼저 제주에 들어와 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기 위해 환해장성을 축조했다.

 

결국 삼별초가 고려 관군을 몰아내 제주를 장악한 후 삼별초 역시 제주의 환해장성을 계속 쌓았다. 환해장성의 방어 대상이 당초 삼별초에서 여·몽 연합군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환해장성은 지속적으로 신축·보수됐다. 당시 출몰이 잦던 왜구나 이양선(異樣船·외국 선박)에 대한 방어정책에 따른 것으로, 현재 남은 환해장성들은 이때 구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도내 19곳 마을 해안가에 환해장성 흔적들이 남은 가운데 이들 중 10곳의 환해장성은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1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됐다.

 

제주시 화북동 곤흘동환해장성(49-1호)·별도환해장성(49-2호), 삼양동 삼양환해장성(49-3호), 애월읍 애월환해장성(49-4호), 조천읍 북촌환해장성(49-5호), 구좌읍 동복환해장성(49-6호)·행원환해장성(49-7호)·한동환해장성(49-8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환해장성(49-9호)·신산환해장성(49-10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된 환해장성들이다.

 

이들 환해장성의 성벽 높이는 1.5~2m 안팎인 가운데 유독 애월환해장성은 4.5m로 높다. 환해장성 단면은 일반적인 성곽 형태와는 달리 대부분 경사져 있고, 성벽을 구축한 방식도 현무암 자연석을 이용한 허튼층 쌓기와 내부 잡석 채움이 결합된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온평환해장성 등 일부는 지반을 다져 구축됐고 상단부에 엇갈림 공법도 동원됐다.

 

이들 환해장성의 잔존 길이는 140~620m로 비교적 짧은데 온평환해장성은 2.12㎞로 가장 길다. 이 환해장성은 서귀포시 온평리 하동 해안부터 신산리 경계지점까지 구축됐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꾸준히 보수됐다.

 

이곳 해안은 1995년 9월 2일 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이 제주에 침투하는 루트로도 이용돼 널리 알려졌다.

 

환해장성은 웅장한 성곽과는 크게 다르다. 성벽이 틈새 없이 차곡차곡 쌓이지도 않았고 빼어나게 멋있지도 않다. 다만 돌멩이 하나하나에 제주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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