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인-삼공주 혼인...제주 최초의 결혼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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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재발견 36-제주도 기념물 제17호 혼인지

혼인지(婚姻池)는 말하자면 제주 최초의 결혼식장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는 삼성신화에서 탐라(耽羅)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와 백년가약을 맺은 연못으로, 1971년 8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됐다.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나무상자에서 나온 세 공주와 결혼했다. 이들은 상자에 함께 실려 온 오곡 씨앗을 뿌리고 송아지·망아지를 기르며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나무상자가 떠내려 온 곳은 성산읍 온평리의 속칭 쾌성개로 이 일대 해안은 황루알로 불려왔다. 황루알에 있는 바위에는 삼신인이 타고 왔던 말의 발자국이라는 흔적도 남아 있다.

 

삼성신화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고·양·부 삼신인이 수렵생활을 하던 중에 하루는 자줏빛 나무함이 동쪽 바다로 밀려왔다. 삼신인은 신기하게 여겨 함을 열어봤더니 푸른 옷을 입은 세 공주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 씨앗 등이 들어있었다.

 

세 공주와 동행한 사신은 “벽랑국 왕이 세 딸을 낳고 이르기를 서쪽 바다 가운데 있는 산에 신의 세 아들이 내려와 장차 나라를 세우려 하지만 배필이 없다. 이에 벽랑국 왕이 제게 명하니 이렇게 세 딸을 모시고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니 마땅히 배필로 삼고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말한 후 홀연 구름을 타고 떠났다.

 

삼신인과 삼공주가 혼인지에서 혼례를 치른 결과 비로소 탐라 창시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혼인지는 대략 1500㎡ 규모로 두 개의 연못으로 구분돼 있는데 중간 지점에 삼공주추원비(三公主追達碑)가 세워져 있다. 혼인지 주변엔 삼신인과 삼공주가 신방을 차렸다는 신방굴, 삼공주의 위패가 봉안된 삼공주 추원각, 전통 혼례관, 탐라생활 사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신방굴은 삼신인과 삼공주가 합방하고 신혼방을 꾸렸다는 곳이다. 과연 동굴은 움푹 파인 입구로 내려가 보면 세 갈래로 나눠져 있어 세 개의 신혼방이었다는 믿음을 높여준다.

 

약 4300년 전 탐라를 창시한 삼신인에 얽힌 삼성신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제주 남성이 외부 여성과 결혼해 정착하면서 건국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삼성신화의 대표적인 사적(史跡)인 삼성혈을 더욱 신성한 곳으로 뒷받침하는 곳이 바로 혼인지인 것이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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