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비들의 머리띠...전통 의관의 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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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중요 무형문화재 66호 망건장...말총으로 제작, 주요 생산지는 조천읍

망건은 갓을 쓰기 전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쓰던 일종의 머리띠다.

 

고려 말·조선 초부터 만들어진 망건은 한국 전통의관의 일부로써 성인 남자가 외출할 때 반드시 갓을 써야 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필수품이었다. 또 조선시대 사대부는 관례(冠禮), 즉 성년의례와 함께 상투를 틀고 망건을 둘렀다. 곧 망건은 어른이 됐다는 상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망건은 개화 후 1895년 단발령에 따라 사람들의 머리가 짧아지면서 점차 사라졌다.

 

망건은 중국 명나라 때 생겨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인의 정서와 환경에 맞춰 토착화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 망건 형태와 재료는 중국의 것과 달라졌다. 중국에선 망건 재료가 비단이었지만 한국에선 말의 꼬리털인 말총이었다. 말총 망건이라고 불린 이유다. 말총을 이용한 망건 제작기술은 거꾸로 중국에 ‘역수출’됐다고 전한다.

 

망건장(網巾匠)은 망건을 제작하는 기술이나 해당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강전향씨(71·제주시 삼양동)다.

 

망건은 맨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편자(하대)와 중간부분인 바닥, 상단부인 당으로 구성된다.

 

관자貫子)와 풍잠(風簪)은 망건을 화려하게 꾸미는 장식품이다. 망건 끈을 잡아매는 고리인 관자의 재료는 신분에 따라 엄격히 제한됐다. 일품(一品)은 옥관자, 이품(二品)은 금관자, 당상관은 흰 옥관자를 착용했고 당하관 이하는 거북 등껍질이나 양의 뿔로 만든 관자를 썼다.

 

망건 제작은 편자를 머리 둘레 길이로 짜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때 날과 씨는 모두 말총으로 대는데 말총은 부러지지 않도록 물에 적셔 사용한다. 편자가 완성되면 망건골(망건 모양 틀)에 걸고 말총을 바늘에 꿰어 바닥을 짜는데 뒷바닥은 촘촘하고 이마에 닿는 앞가리는 성글게 뜬다.

 

여기에다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을 건 후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도록 망건골에 씌운 채 그대로 삶아내면 짜고 겯는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어 당에 당줄을 걸어 매고 편자와 바닥에 명주싸개로 선을 둘러 견고함을 높인 뒤 관자를 붙이면 망건 제작이 완성된다.

 

편자를 짜고 당을 거는 과정까지 체의 틀을 3개 붙인 ‘체떼기’가 작업의 받침대로 사용된다.

 

한 향토사학자는 “망건 제작은 섬세한 공예작업인 만큼 얼마나 예쁘면서 견고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났다. 또 말총의 질도 제품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며 “망건은 전통 의관을 구성하는 요소로 제주에선 조천읍 일대가 주요 생산지였다”고 전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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