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동문시장 전소·제주시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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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과 함께 한 70년(1954~1955년)
   
▲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 새롭게 출범했다. 사진은 제주시가 1959년 삼도동에 벽돌2층으로 지은 건물로 1980년대 초까지 제주시청 청사로 이용됐다.

4·3사건과 6·25 전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제주지역은 1954년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월 20일에는 1953년 10월 31일 공법인으로 인가된 제주상공회의소 초대회장에 이종렬씨가 선출됐다.

 

1월 30일에는 제주~서울간 무선연락 취급이 개시됐으며, 2월 10일에는 최초의 도입어선인 구도환(龜島丸)이 제주시 산지항에 입항했다.

 

같은 해 3월 13일에는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보는 1954년 3월 14일자에 당시 상황을 ‘어제 하오 시내 매일시장에서 대화(大火)가 발생하여 삽시간에 시장일대를 전소하였다’고 전했다.

 

당시 화재는 3월 13일 오후 5시45분께 잡화행상이 휘발유통 옆에서 라이터를 켜는 순간 불이 인화되면서 발생했다.

 

불은 때마침 초속 10m의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시장을 모두 태우고 오후 8시께는 북서쪽 산지천 하류에 있는 건물과 남쪽으로 일주도로를 건너 주택까지 번졌다.

 

이 화재로 2명이 불에 타 숨졌고, 13명이 중화상을 입었으며 건물 112동이 소실됐다. 1억70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재민이 486세대, 2060여 명에 달했다. 이재민 등은 제주북초등학교 등에 분산 수용됐다.

 

KCAC(한국민사원조처사령부)는 구호곡 2000t을 보내왔고, 육국 제1훈련소에서는 천막 30장을 지원했다.

 

제주읍의회에서는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시장 재건비 1700만원을 새예산으로 편성했다.

 

4월 1일에는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됐고, 5월 20일에는 제3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돼 북제주군 갑구에 김석호, 을구에 김두진, 남제주군에는 강경옥이 당선됐다.

 

이 해에는 버스운송사업조합과 화물자동차조합이 결성되는 등 도내에서 본격적인 운수사업이 시작됐다. 4월 1일에는 제주지역 최초로 버스운송사업조합이 결성됐으며, 7월 1일에는 화물자동차조합도 결성됐다. 당시 화물자동차회사는 제주화물과 제화화물, 삼양기업, 상호화물, 조흥자동차부 등 5개 회사가 설립돼 71대의 화물차가 화물 수송을 했다.

 

9월 21일에는 4·3사건이 발생한 후 6년 6개월 만에 제주 전지역이 평상시 체제로 환원됐다. 신상묵 제주도경찰국장은 이날 한라산 금족지역(禁足地域)을 해제하고 전면 개방을 선언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부과됐던 마을 성곽 보초임무도 철폐했다.

 

10월 1일에는 제주대학이 용담리 소재 한국피혁공업주식회사의 건물을 매수하고 인근 부지 4251평을 확보, 학장실과 사무실, 교수 대기실, 강의실, 강당 등 총 17실, 522평을 마련했다.

 

같은 달 10일에는 제주신보사가 주최하는 ‘한라산 개방 기념 답사’ 행사가 열려 길성운 지사와 김창욱 검사장, 신상묵 경찰국장 등 각계 인사 66명이 참가했다.

 

11월 23일에는 제주시 서문상설시장이 건물 7동에 180개 점포 규모로 개장했다.

 

1955년을 맞아 새해 벽두부터 제주도는 도량형을 ‘되’에서 ‘미터’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한다. 이에 대해 제주신보는 1월 10일자에서 ‘내월부터 미터제 실시’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부정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사용으로 인하여 상계에 가지가지의 불미한 현상을 짜아내고 있거니와 도 산업당국에서는 부정 도량형기 사용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서 상도덕을 거양시키고자 도 산업국장과 경찰국장 공동 명의로 각 군수에게 강력한 통첩을 보내고 2월 1일부터는 도량형기를 전부 미터제로 통일한다’고 전했다.

 

3월 6일에는 제주와 서귀포 간 전신 전화가 개통됐고, 3월 13일에는 문교부가 제주대학에 4년제 교직과 설치를 승인했으며 4월 6일에는 제주대학이 도립 4년제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바로 다음 날인 7일에는 제주제일고등학교가 설립을 인가받았고, 9일에는 남주고등학원이 설립됐다. 8월 26일에는 제주대학 본관 신축 기공식이 거행됐다.

 

1955년에는 제주 최초의 관광사업체가 탄생했다. 이 해 4월 이동규씨가 제주시 칠성통에 ‘제주관광안내소’를 설립했는데 제주관광의 여명기에 독창적으로 ‘삼다, 삼무’를 관광홍보물에 처음 사용해 오늘날 제주도의 관광대명사로 일반화시켰다.

 

이 해 가장 큰 뉴스는 단연 제주읍이 23년간의 읍 체제를 마치고 제주시로 출범한 것이었다. 제주신보는 9월 1일자에 ‘오늘부터 시제 실시’라는 제목으로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9월 1일은 23년간의 오랜 읍정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히우고 제주시의 탄생을 보는 날이다.

 

전라남도의 관할하에 있던 본도가 지난 4279년(단기) 도로 승격 분리되면서 남북 양군을 신설한지 9년 만에 명실 아루른 문화·경제·산업·교육의 중심지로서 발전을 거듭하여 새로운 기원을 획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제주시의회는 1차 본회에서 22표 중 14표를 얻은 부읍장 출신의 최수진을 초대 시장으로 선출했다. 10월 22일에는 도청(현 제주시청) 앞에 공설운동장이 마련돼 제주시제 실시 경축 체육대회가 열렸다. 12월 10일에는 서귀포~부산 여객선인 경양호(180t·목선)가 처녀 취항해 월 3회 운항했다. 김대영 기자 kimdy@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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