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주비행장서 제주~서울 정기 항공편 운항 시작
(8) 제주비행장서 제주~서울 정기 항공편 운항 시작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첫 외국인 단체 관광객, 제주 풍광에 매료
   
1958년과 1959년 제주지역은 항공과 뱃길 연륙 교통이 새롭게 개척되고, 한라산 횡단도로 복구 공사가 이뤄지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진 왼쪽은 1958년 3월 제주와 서울 간 정기운항을 시작한 KNA기. 오른쪽은 같은 해 11월 8일 영국 왕실 아세아학회 주최로 첫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산지항에 도착하자 학생과 일반인 등이 환영하는 장면. <자료 제공=제주시>

 

▲연륙교통 개척과 첫 외국인 관광객 입도=1958년 1월 30일 대통령령 제1319호로 제주비행장이 설치됐다. 제주비행장은 1968년 4월 26일 국제공항으로 승격했다.

1958년 3월 15일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인 국내 최초 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KNA)’의 쌍발여객기 DC-3가 시험비행에 나섰다.

제주신보(현 제주일보)는 1958년 3월 15일자 보도를 통해 “3월 20일부터 매주 목요일 1회 왕복 정기운항을 위해 시험비행을 했다. 당분간 광주를 경유하게 될 것이며 운임은 서울-제주 1만5000원환‘이라고 전했다.

KNA기는 이듬해인 1959년 5월부터 제주-서울 간 정기운행을 주3회로 증편해 월·목·토요일에 부산 경유로 운항했다.

같은 해 5월 27일 제주우체국은 서울·광주 항공우편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KNA 항공기가 제주-광주-서울 간을 정기운항한데 따른 것이다.

1958년 9월 5일에는 제주-목포 간 해상 정기항로에 근해상선 화양호가 부산에서 개조를 끝내고 취항면허를 받았다.

이듬해인 1959년 2월에는 제주-목포 간 해상에 미 함정을 개조한 새 여객선 경주호(320t)가 취항했는데 시속 15마일의 속도로 제주-목포를 6시간에 주파했다.

당시 제주-목포 항로에는 한려호, 황영호, 화양호 등 3척이 운항하고 있었는데 이에 경주호가 취항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제주신보(현 제주일보)는 1959년 7월 15일자 보도를 통해 ‘제주-목포 정기여객선 결손운항이 심각한 실정에 이르고 있다. 황영호는 정원 240명인데 승객은 평균 30~40명, 화양호는 정원 219명인데 승객 60~70명, 경주호는 정원 300명인데 승객은 50~60명에 불과한 형편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제주 해상운송수단은 계속 늘어나 같은 해 7월 21일 제주-여수 항로에 미 YMS함을 개조한 정기여객선 제주호(330t)가 취항했다.

제주호는 이 해 사라호 태풍으로 해운공사 소속 이리호와 평택호가 선박수리에 들어가자 임시로 제주-부산 간을 운항하다 12월 13일부터 제주-부산 항로에 정기 취항했다.

각종 연륙교통의 발달 등으로 1958년 11월에는 첫 외국인 관광단이 제주를 찾았다.

영국 왕실 아세아학회 주최로 제주를 찾은 첫 외국인 관광단은 모두 111명으로 한국 해군함정편으로 제주 산지항에 도착했다. 주한미국대사관, 미8군 등의 외교관과 행정관 등으로 구성된 제주 관광단은 6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제주를 둘러봤다.

제주신보(현 제주일보)는 1958년 11월 9일과 12일자 보도를 통해 ‘성산봉,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등을 그 경치가 본토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광이었다. 또 가옥의 구조와 생활양식도 본토나 일본, 중국과도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독특한 개성과 전통이 오래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섬 사람들은 강인한 정신과 근면하다’는 관광단의 소감을 전했다.

이 밖에 1958년 8월 29일에 제주문인협회가 창립됐으며, 1959년 2월 9일에는 제주도한햑협회가 창립했다.

또 1959년 3월 9일 당시 정부는 관덕정을 국보 제478호로 지정했다.

▲한라산 횡단도로 복구공사=1958년 6월 한라산 횡단도로 1차 복구공사가 완료됐다. 총 공사비 1500만환으로 제주시 삼의악교부터 수장원 동북쪽까지 1차로 7440m 길이를 착공해 7개월만에 완공했다.

제주신보(현 제주일보)는 1958년 6월 6일자 보도를 통해 ‘일제 때 평면도로로 개척한 채 버려둔 것을 23년만에 복구에 착수했다. 작업일수는 186일, 인부는 1만9300명’이라고 전했다. 2차 복구공사는 같은 해 8월부터 11월까지 이어졌다.

1958년 10월에 제주시는 도포포장 등 3개년 계획안을 만들었다.

제주신보(현 제주일보)의 1959년 10월 2일자 보도에는 도로포장과 교량 확장 공사, 시민회관 신축 공사 등의 3개년 계획과 예산 등이 소개됐다.

1959년 2월 한라산 횡단도로를 관광도로로 개량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당시 계획은 총 연장 45㎞의 횡단도로를 아스팔트 포장해 제주시와 서귀포를 1시간 20분에 통과할 수 있는 관광도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 문제로 일주도로 정비를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결국 한라산 횡단도로는 1962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제주를 방문한 이후 포장공사가 본격 시작돼 1963년 10월 5·16도로가 개통됐다.

현봉철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