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제주는 한국의 보고(寶庫)" 종합개발계획 수립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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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교육자치제 실시와 최정숙 초대 교육감 선출...1965년 비양도 해저수도 통수식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의 시작

1964년 3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내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안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대두했다. 관광사업개발 문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문제, 제주~일본 간 삼각항로 문제도 거론됐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3월 17일 자 보도를 통해 ‘박 대통령은 제주도는 관광이나 산업 견지에서 볼 때 한국의 보고(寶庫)이다. 제주도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라며 ‘종합적인 개발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라고 전했다.

제주도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3월 21일 건설과를 중심으로 제주도 건설종합계획심의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5월 13일 7개 항목으로 종합계획안을 마련, 10년 동안 173억원을 투자해 11년째부터는 연 4억3900만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같은 해 10월 20일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안이 최종 중앙심의회에 부의 됐다.

10년 동안에 국고 140억원 등 모두 216억원을 투자, 10년 후 순이익은 총투자액의 20.5%인 44억원으로 추정됐다.

관광개발 분야의 경우 관광도로·숙박시설·오락시설·문화시설을 확장하고 자원을 개발해 연간 18만명을 유치하도록 했다. 오락시설로 제주시 산천단과 서귀포에 특수유흥장, 성산포에 낚시터, 문화시설로 식물원·민속관, 성판악~정상~왕관릉~영실을 잇는 한라산 케이블카 가설 등이 계획됐다.

교통시설은 180㎞의 우회선 확장·포장 및 해안선 경편철도 부설, 화순항 1만t급 선박 출입, 제주공항의 A급 국제공항 확장이 계획됐다.

도시개발 분야에서는 제주시는 상공업도시, 서귀읍은 관광·수산·공업도시, 대정읍은 군용도시, 한림·성산은 수산·공업도시로 지정해 시설 허가를 내주도록 했다.

농산지 개발은 해발 200~400m의 10도 이하 경사지 2만정보를 농산개발 가능지역으로 보고 개간, 연 170만석의 곡물과 3만5000t의 특용작물을 생산하도록 했다.

수산지 개발은 제주시·서귀포·성산포·한림·모슬포·추자·표선·김녕의 8개 항을 개발 또는 지정항으로 하고 중점적 어업시설을 확장해 수산업의 기지시설을 갖추도록 계획됐다.

축산지 개발은 소 10만두, 말 2만필, 젖소 500두, 면양 5만두를 방목하고 돼지 8만마리를 사육하도록 계획됐다.

공업지 조성은 고구마·설탕 공장(제주시·서귀포), 정유공장(제주시), 섬유공장(서귀포), 우유처리공장(한림), 전분공장(도내 일원) 설립이 계획됐다.

용수 개발은 도시 용수, 위성 취락 용수, 전원 취락 용수, 개간지 취락 용수 등 인구 50만명을 기준으로 하고 공업용수 3만3500t을 확보하도록 했다.

그 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은 심의 과정에서 3억원이 더 늘어난 총 219억원 규모로 짜였다.

1965년 6월 21일 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도 종합개발추진위원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은 중앙정부가 제주도의 지역 개발을 계획적으로 개발하려고 한 최초의 계획이다. 하지만 제주지역의 각종 관광투자 방안 제시에도 별로 추진되지 못하다가 1971년 제주도 종합개발 10개년 계획, 1973년 제주도 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 등을 거치면서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 교육자치제 실시와 초대 교육감 선출

1964년 시·도 단위의 교육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제주지역도 초대 교육감 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1월 6일 제1회 교육위원회 회의가 제주도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당연직 의장인 도지사를 비롯해 교육위원 6명은 두 차례의 투표 끝에 교육계 원로인 최정숙 여사를 초대 교육감으로 선출했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1월 7일 자 보도를 통해 최 여사가 2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4표를 얻어 문교부에 추천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최정숙 교육감은 신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당시 대한적십자 부녀봉사대 자문위원장으로 정화의원에서 결핵 환자들을 무보수로 돌보고 있었다.

최 교육감의 선출은 당시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유교 사상에 입각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 교육감의 선출을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 교육감은 2월 4일 제주농업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 평소처럼 검소한 한복 차림으로 등장, ‘창의와 노력으로 전진하는 교육’이라는 지표 아래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교육 제주 건설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최 교육감은 임기 4년 동안 학원의 민주화, 생산 기술의 연마, 능력 계발, 체위 향상이라는 역점 시책을 폈다.

그러나 교육자치제 실시에도 교육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데다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로 인해 고등학교 교장 발령도 문교부의 승인을 받는 등 교육감의 권한은 미미했다.

▲ 비양도~협재 해저수도 통수식

1965년 10월 15일 역사적인 한국 최초의 해저수도 통수식이 제주에서 열렸다.

한림읍 비양도에 협재리에서 해저수도 1.8㎞가 준공된 것이다. 그동안 배로 운반하던 식수가 비양도에서 직접 수도꼭지를 통해 공급되면서 주민 300여 명의 식수 문제가 해결됐다.

이 사업은 이해 6월 25일 착공 후 4개월도 안돼 결실을 본 것이다.

당시 비양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해군 경비부 사령관 허승룡 대령이 김태준 군수와 함께 제주도와 절충해 도비 보조금 70만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됐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10월 16일 자 ‘비양도에 물이 나오던 날 ’ 제하의 보도를 통해 ‘천수(天水)가 나온다 두둥실’, ‘오래 살고 보면 이런 물이…’ 부제로 당시 온 동네가 잔치로 법석대던 표정을 소개했다.

김재범 기자 kimjb@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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