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주인의 삶과 역사가 오롯이 담긴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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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거문오름
   
제주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서 오름에 묻힌다고 한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부드러우면서 봉긋한 오름에 제주사람들은 기대며 살아왔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있는 거문오름(해발 456m)은 도내 360여 개의 오름 중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데서 유래된 거문오름은 약 30만년에서 10만년 전 사이에 수 십 차례 화산 폭발을 일으켰다.

오름 분화구 둘레는 4551m로 한라산 백록담 1720m에 비해 2.6배나 더 크다. 이를 볼 때 엄청난 양의 용암류가 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류는 낮은 지형을 따라 북동쪽 월정리 바닷가까지 15㎞나 흘러 내렸다.

이 과정에서 20여 개의 용암굴이 생겼다. 5개의 핵심 동굴인 만장굴·벵뒤굴·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모태인 거문오름도 2007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름 답사는 2012년 문을 연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출발한다. 1일 탐방객은 400명만 허용하므로 탐방 하루 전까지 인터넷(wnhcenter.jeju.go.kr)으로 예약해야 한다.

오름 답사 코스는 짧게는 1.8㎞에서 정상과 분화구, 능선을 종주하는 10㎞의 태극길이 있다.

백발의 노부부, 답사 내내 손을 놓지 않았던 연인, 자녀와 함께 온 관광객 등 30여 명과 함께 탐방을 시작했다.

초입은 삼나무 숲길로 오르막 구간이다. 이어 나무데크를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정상 인근에 설치된 전망대가 나온다.

한라산 자락에 펼쳐진 다양한 오름의 군상과 분화구 내에 있는 알오름(372m)을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화창할 때는 서귀포시 남원읍까지 보인다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분화구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좁지만 깊게 패인 ‘용암 협곡’이다.

다른 협곡이나 계곡처럼 물이 흘러 암석을 깎아낸 것이 아니라 골짜기로 흐른 용암이 동굴을 형성했다가 지붕(천장)이 무너지면서 생긴 것이다. 폭은 1.5m에 불과하지만 깊이는 15~30m, 길이는 2㎞에 달한다.

분화구 사면에는 서어나무, 때죽나무, 예덕나무 등 낙엽 활엽수림대가 나타나지만 분화구 바닥에는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붓순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룬다.

오름에는 아열대와 난대, 온대에 걸쳐 출현하는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는데 분화구 내부에는 뜨거운 용암이 굳어서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변한 곶자왈이 생성됐다. 화산암마다 초록의 이끼가 덮여 있어서 원시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9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화구 내부는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108여단 소속 6000여 병력이 이곳에 집결, 10여 개의 동굴진지(갱도)를 뚫고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분화구에 숨어들어 최후의 결전을 대비했다.

이어서 만나는 숯가마터는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 올린 아치형 가마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깊은 숲에 들어가 숯을 구우며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바위 틈 사이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뿜어내는 ‘풍혈’이 나온다. 곶자왈 돌무더기 사이로 더운 바람이 들어가 밑으로 통과하면서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는 원리다. 겨울에는 이와 반대로 훈풍이 나온다고 한다.

답사의 마지막은 깊이가 35m로 항아리 모양을 한 수직동굴이다. 4·3 당시 무장대가 토벌대 편에 섰던 주민 한 명을 동굴에 떨어뜨려 숨지게 했다.

1990년대 초 무장대에 속했던 한 주민이 이를 고백했고, 사죄를 받아들인 가족들은 유골을 수습했다.

김상수 자연유산 해설사(56)는 “많은 학자들이 제주의 생태에서 지질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만든 것이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라며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지질학적 가치와 더불어 제주인들의 삶과 역사, 문화가 오롯이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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