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남영호 침몰…323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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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후 세월호 참사 반복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지 못하는, 아니 잊어서는 안되는 날로 기억된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인 세월호가 침몰해 대형 참사가 일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4년 전 똑같은 대형 참사가 제주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남영호에서 일어났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聞(제주신문)은 1970년 12월 15일자에 ‘客船(객선) 남영호 침몰 260여 명 익사’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승객 2백70여 명을 태우고 제주를 떠나 부산으로 가던 정기 여객선 남영호가 15일 새벽 1시25분 대마도 서쪽 1백km 지점에서 전복 침몰하여 6명만이 구조되고 나머지 2백60여 명은 실종되었는데 이날 정오 현재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당시 남영호는 14일 오후 5시 승객 338명과 화물 209t을 싣고 서귀포항을 출항해 부산으로 가던 중 15일 새벽 전라남도 여수 소리도 인근에서 침몰해 승객 323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15명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 남영호 여객 정원은 302명이었지만 36명을 더 태웠고, 감귤 수확철을 맞아 감귤상자 등 화물도 정량 150t을 초과해 2~3배나 많이 실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침몰 원인은 화물 과적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남영호 승객 대부분이 제주도민들이어서 남영호 침몰로 인한 도민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려던 일가족 5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도민사회는 깊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제주신문은 남영호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남영호 희생자 조의금품을 접수하는 등 유가족 돕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남영호 참사가 화물 과적으로 인한 인재로 밝혀지면서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44년 후 똑같은 이유로 세월호가 침몰, 단원고 학생 등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후 1971년 7월 16일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 서귀포항에 건립됐지만 항만 확장 공사로 인해 1982년 9월 서귀포시 상효동 돈내코 인근으로 옮겨졌다.

 

서귀포시는 위령탑이 낡고 위치도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12월 15일 서귀포시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 해안에 위령탑을 새롭게 건립해 위령제를 지냈다. 김대영 기자 kimdy@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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