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숲의 정기를 받아 많은 인재 배출
(18) 숲의 정기를 받아 많은 인재 배출
  • 좌동철 기자
  • 승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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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금산공원
   
▲ 금산공원 가운데로 난 숲길에는 울창한 상록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다.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는 사시사철 푸른 난대림지대인 ‘금산공원’이 있다. 면적은 3만2704㎡로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산책 코스가 조성됐다.

1㎞ 남짓한 짧은 코스지만 원식생 연구 등 학술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아 1993년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됐다.

숲에는 난대성 수목 60여 종 등 약 200종의 자연림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후박나무와 생달나무, 신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며, 거목 아래에는 자금우와 마삭줄 등 양치류가 자생하고 있다.

납읍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이 숲은 올레 15코스를 찾은 올레꾼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입구에 있는 목재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빽빽하게 우거진 숲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정면에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지만 좌우로는 나무판자를 깐 탐방로가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나뭇잎이 푹신하게 깔린 길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돌면 돌투성이 길을 지나 다시 흙길과 만나게 된다.

평탄하고 아담한 숲길이지만 한낮에도 햇빛을 가리는 울창한 원시림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공원의 한 가운데는 포제단과 포제청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남자들이 주관해 유교식 제를 올리는 데 다른 마을과 달리 세 신위를 모신다.

포신(인물·재해를 다스리는 신)과 토신(마을 수호신), 서신(작은 마마 신) 신위를 모신 세 개의 돌제단이 있다.

주민들은 ‘작은 마마’(홍역)에 걸리지 않도록 서신을 모셨으나 홍역의 위세가 꺾이면서 더는 모시지 않고 있다. 납읍리 마을제는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됐다.

금산공원은 원래 돌무더기 땅이었다. 남쪽에 있는 검은오름(금악봉)이 화체(火體)로 보여 화재를 막기 위해 오름이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액막이를 한 것이 숲의 시초다.

수 백 년 동안 가꿔왔던 울창한 숲은 1946년 초등학교를 신축하면서 황송 등 큰 나무가 벌채돼 훼손됐다.

4·3사건으로 애월·곽지 등 해안마을로 피신했던 주민들은 1951년 귀향했으나 댁거리 동네에서 불길이 치솟아 가옥 7채가 전소되자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후 주민들은 숲을 신성시 해 마소 방목은 물론 나뭇가지 하나, 낙엽 한 줌도 긁어가지 않는 등 나무 보호에 정성을 다했다.

주민의 사사로운 출입을 막으면서 이름 그대로 금산(禁山)이 됐다. 이후 숲이 울창하고 아름다워지자 50년 전부터 ‘비단 금(錦)’자를 쓰기로 하고 ‘금산(錦山)’으로 바꿨다고 한다.

공원에는 유림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송석대(松石臺)와 인상정(仁庠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송석대는 조선 말기 제주 사림의 영수로 추앙받던 이 마을 출신 김용징(1809~1890)이 후학 양성을 위해 조성했다. 3개 층으로 쌓은 원형 정자는 누각을 올리는 대신 길게 뻗은 후박나무가 지붕을 대신하고 있다.

각 마을에 흩어져 있던 서당에서 한학을 연마한 유생들은 여름이면 이곳에 모여 서로의 실력을 겨뤘다.

그래서일까 납읍리에선 과거 급제자가 나오면서 문촌(文村)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이 정기를 이어받아 후손들 가운데는 법조계와 행정·교육·경찰 등에서 고위직을 여럿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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