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수줍던 벽랑국 세 공주, 단아한 연꽃으로 다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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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주도로에서 중산간 방향으로 얼마 못가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혼인지(婚姻址)가 지척에 있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이 표지석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제주도 탄생 후 최초의 결혼식장인 혼인지(婚姻池)가 나온다.

 

이 혼인지는 인간으로서 제주 땅에 첫 발을 내디딘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의 세 공주와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신비한 전설을 품고 있는 곳이다.

 

수렵생활을 하던 삼신인이 이 세 공주와 혼인을 올리고 이들이 가져온 곡식 씨앗을 뿌리면서 제주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정착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맞는다.

 

▲벽랑국의 세 공주=아득히 먼 옛날 삼성혈(三姓穴)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梁乙那), 부을나(夫乙那) 라는 삼신인이 솟아났다. 이들은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렵과 어로생활을 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사냥을 하다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 내려와 해안에 머무는 것이 보였다.

 

삼신인은 그 곳을 찾아가 목함(木函)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알 모양의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옆에는 관대(冠帶)를 하고 붉은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그 옥함을 여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세 안팎의 공주 세 명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五穀)의 씨앗이 있었다.

 

사자가 삼신인에게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使者)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공주님을 두셨는데, 장성하셨는데도 배필을 구하지 못했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삼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신(臣)에게 명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에 삼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세 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곳  연못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연못 인근에 있는 굴속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혼례 후 삼신인과 벽랑국의 세 공주는 함속에서 나온 송아지와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삼신인과 벽랑국 공주의 혼인으로 제주에서 농경과 목축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세 공주가 들어 있던 목함이 발견된 곳은 성산읍 온평리의 속칭 ‘쾌성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여기에는 세 공주가 함에서 나와 제주 땅에 처음으로 디딘 발자국이 아직도 바닷가 암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삼신인과 세 공주가 이 연못에서 백년가약을 맺었기에 연못 이름이 혼인지로 불리게 됐으며 이들이 첫날밤을 보낸 굴은 ‘신방굴’로 불리고 있다.
지상에서 땅 속으로 움푹 파인 신방굴 입구로 내려가 보면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세 개의 신혼 방 이었다는 전설에 사실성을 높여 주고 있다.

 

▲혼인지의 의미= 혼인지는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봉천수로 된 연못이지만 삼성혈의 삼신인과 함께 벽랑국 세 공주와의 결혼이라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삼신인이 태어난 삼성혈을 더욱 신성시 해주는 것이 바로 벽랑국 세 공주와 이들이 혼인한 혼인지로 1971년 8월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됐다.

 

서귀포시(옛 남제주군)는 제주 개벽신화의 이 혼인지의 복원 및 보전을 통해 탐라인의 생활상을 조명하고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해 제주 고유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관광지화 하기 위해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전통 혼례관 신축을 비롯 화장실과 관리사무소, 연못 주변 산책로 설치 등 주변 정비 및 삼신인과 벽랑국 세 공주가 첫날밤을 보낸 동굴을 정비했다.

 

또한 매년 가을 이 곳에서는 삼신인이 바닷가에서 벽랑국 세 공주를 맞이해 혼례를 치르는 전설을 재현하는 혼인지 축제가 열리고 있다.
과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마을주민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됐던 혼인지가 제주 개벽신화가 곁들여 지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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