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격변의 시대...화해와 상생 전파하다
(42) 격변의 시대...화해와 상생 전파하다
  • 좌동철 기자
  • 승인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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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화해의 길
   
▲ 1952년 모슬포 옛 육군 제1훈련소에 건립된 강병대교회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화해의 길’은 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 4코스로 4·3으로 순교한 목회자의 희생을 기리며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길은 이도종 목사 순교터~대정교회~추사 유배지~모슬봉~강병대교회~모슬포교회~조남수 목사 공덕비까지 11.3㎞로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제주 출신 1호 목사인 이도종(1892~1948)은 순회 예배를 가던 중 무장대에 의해 무릉리 인향동에서 생매장을 당해 순교했다.

이 목사의 회중시계를 갖고 있던 무장대가 붙잡히면서 행방이 묘연했던 그는 희생된 지 1년 후에야 시신이 발견됐다.

4·3 당시 희생된 교회 지도자는 17명으로, 불태워진 교회는 5곳에 이른다. 서로 죽이고, 죽는 광풍 속에서 조남수 목사(1914~1997)는 무장대에 협조한 양민들에게 자수를 권고하는 연설로 많은 목숨을 살렸다.

6·25전쟁으로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섰다. 1952년 장도영 소장은 강한 병사를 기른다는 의미에서 훈련소에 ‘강병대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선교뿐만 아니라 교육과 복지·의료 등 대민 봉사에 앞장섰다. 1952년 대정읍에서 최초로 문을 연 샛별유치원은 이 교회에서 태동했다.

군인들은 산타할아버지로 변신, 전쟁 고아들에게 옷과 신발을 선물했다.

부대 장교들이 교사로 나서면서 1966년 교회 부설 신우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됐다. 1981년 폐교될 때까지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200여 명이 졸업했다.

전장으로 가는 장병들에게 위안을 주고 피난민들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강병대교회는 60년이 넘도록 원형이 보존된 역사 유적으로 남아 등록문화재 38호로 지정됐다.

1909년 이기풍 목사가 설립한 모슬포교회는 2대 윤식명 목사가 초석을 다졌다. 그는 1918년 법환리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 신흥종교인 태을교(보천교) 교인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왼쪽 팔이 불구가 됐다.

팔을 잃은 윤 목사는 목포로 압송되는 태을교도 60여 명을 용서해 달라고 군인들에게 간청하는 등 이들을 용서했다.

윤 목사는 또 독립 군자금을 모금하다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20년 조선의 광복을 염원하며 교회 부설 광선의숙(光鮮義塾)을 설립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가파도 출신 고수선 애국지사(1898~1989)는 경성의전을 졸업해 제주 최초의 여의사가 됐다.

고 지사는 만세 시위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문맹 퇴치와 여권 신장, 아동 복지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벌여 1980년 제1회 만덕봉사상을 수상했다.

특히, 기독교에서 파견한 여성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제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 평양여전도회는 한국 최초의 여 선교사로 꼽히는 이선광을 1908년부터 5년간 제주에 파견했다.

광주부인전도회는 1923년부터 1년간 협재교회에 여 전도인 김경신을 파견했다. 황해노회는 1918년 오인권 여 전도인에 이어 이듬해 이경신 전도사를 파송했다.

화해의 길은 일제강점기와 4·3사건, 6·25전쟁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갔던 목회자들이 사랑과 희생으로 일궈낸 기독교 개척사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은 현재 미완성이다. 앞으로 개설될 5코스는 제주 기독교사에 한 획을 그은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처음 당도한 산지천 일대와 원도심을 중심으로 길이 열릴 예정이다.

코스는 사라봉 조봉호 애국지사 기념비에서 이 목사가 도착한 산지 포구, 제주성내교회, 제주YMCA, 옛 제주영락교회 터 등을 연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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