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독특한 유배문화 남긴 제주 유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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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안 유배길...제주목 관아를 중심으로 조성
   
▲ 오현단 암벽에 새겨진 ‘증주병립(增朱壁立)’은 중국의 대학자인 증자와 주자가 쌍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증자와 주자를 공경하고 배운다’는 뜻으로 송시열이 글씨다.
중죄인을 멀리 보내는 형벌로 즉결 추방을 당한 유배인을 제주에서는 ‘귀양다리’라 불러왔다. ‘귀향(歸鄕)살이’에 어원을 둔 말이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양진건 교수팀은 2012년 지식경제부의 광역경제권사업으로 ‘제주성안 유배길’을 개설했다. 제주목 관아를 중심으로 유배길은 3㎞에 이른다.

유배인들은 제주에 독특한 유배 문화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현(五賢)이다. 송시열, 김정, 정온 등 3명은 유배인이다.

여기에 1534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송인수, 1601년 안무사로 온 김상헌이 포함됐다.

유림들은 오현을 모시고 배향했으며, 김정의 묘를 옮기고 세운 귤림서원은 제주 학문의 중심이 됐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귤림서원도 철거됐다.

안타깝게 여긴 유생들은 작은 돌 다섯 개를 비석처럼 세워 매달 초하루 배향을 하면서 오현단이라 불리게 됐다.

조선 중기 대학자이자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1607~1689)은 장희빈이 낳은 아들(경종)의 왕세자 책봉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83세 고령임에도 유배를 왔다.

귀양 생활은 100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유림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영조 때 유배를 온 권진응은 송시열의 유배지에 유허비를 세워달라고 부탁했고, 추사 김정희는 그를 기리며 시를 남겼다. 최익현은 시와 편지, 상소문에 송시열을 자주 거론했다.

제주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오현단에 유허비가 세워져 그를 기리고 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사림파들의 개혁 정치가 실패하자 제주로 유배를 온 김정(1486~1521)은 유배 온 지 1년 2개월 만에 왕의 자진 명령을 받고 36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제주풍토록’은 제주와 관련된 최초의 풍토지로 기후와 가옥 구조, 뱀신과 무당의 피해, 관원의 횡포 등 16세기 제주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했다가 8년간 유배 생활을 한 이익(1579~1624)은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다.

제자인 명도암 김진용은 성균관에 진학했고,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마을은 그의 호를 따르고 있다.

부인과 사별한 이익은 헌마공신 김만일의 딸을 배필로 맞이했다. 이로써 그는 경주이씨 국당공파 제주 입도조가 됐다.

그가 낳은 아들은 인제(仁濟)라 이름 지었다. 유배인들은 제주 여인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제주를 뜻하는 ‘제(濟)’, ‘영(瀛)’, ‘탐(耽)’ 자를 이름에 붙이곤 했다. 이익의 아들 인제는 훗날 훈련원 판관(종4품)에 올랐다.

조선의 문신 김진구(1651~1704)는 장희빈이 중전에 앉게 되자 부당함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왔다.

유배 중 오정빈·고만첨·양수영·이중발·정창원·김덕항·백희민 등 걸출한 제자를 배출했고, 이들 중 대다수는 문과에 급제했다.

김진구의 아들 김춘택도 1706년 유배를 와서 부친이 머물던 집에 기거를 했다. 그의 손자 덕재와 사위 임징하까지 제주에 유배를 오는 등 온 집안이 유배인 신세를 겪어야 했다.

유배는 조선 말 대한제국에서도 이어졌다. 명성황후 시해 음모(을미사변)를 알고서도 방관했다는 탄핵을 받은 김윤식은 1897년 제주에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는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도로 가는 ‘삼남대로’ 유배길이 아닌 인천에서 증기선을 타고 산지포구로 들어왔다.

1884년 근대화를 목표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권을 장악했으나 삼일천하로 그친 박영효(1861~1939)는 1907년 제주에 1년간 유배를 왔다.

그는 제주에서 근대 학교 개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07년 사립 의신학교 설립 시 거금을 희사했고, 선교사 라쿠르 신부를 도와 제주 최초의 근대 여학교인 신성여학교 개교에 기여하는 등 제주에 개화의 씨앗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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