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통신
겨울 통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꿈 하나 가지고 살아야겠기에 가슴 설렙니다. 고단한 몸으로 돌아온 귀갓길이지만, 자고 나면 어제의 등짐을 부려 놓고 현관을 나서는 우리입니다. 지난밤, 생에 대한 단안을 내렸다가도 창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미면 가슴 뛰지 않나요?

얼음장 밑으로 강물은 흐르고, 섬에 오는 삭풍도 빈가지에 걸린 햇살을 시샘하진 않지요. 추위에 날개 접었던 새도 숲을 내려 외로운 사람의 그림자에 훗훗한 소리를 퍼뜨립니다.

눈발 속에 피어난 수선화는 경이입니다. 추울수록 향기가 짙으니까요. 천리향이 벙글 채비에 분주한가 하면, 동창 앞 백매도 꽃 준비에 골몰해 있어요. 겨자씨 만하던 망울들이 물올라 봉곳봉곳한 게 신통하기만 합니다.

자연은 어김없는 선순환구조입니다. 눈 녹아 흐르는 앞개울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버들개지 눈 뜨고, 봄비 한 줄금 뿌리고 지나니 앞산 너머 구름 한 조각 걷어낸다고 뻐꾸기도 한소리 하네요. 계절로 이행하는 염량(炎凉)의 순차적 진행을 우리는 신뢰하며 삽니다.

문제는 사람에게 있어요. 우리는 너무 섬약합니다.

쉬이 버리고 돌아서고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돌아앉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요. 따뜻한 사랑이 없다는 반증이지요.

사랑은 마음으로, 신앙 이전에 온기입니다. 미열에도 이마를 짚는 손, 상처를 어루만지며 언 손 잡아 주는 따스한 손길입니다.

미담 하나 듣고 추위도 물렸습니다. 지난여름 서울 금천구청 앞에 한 남자가 박스 하날 놓고 사라졌대요. 그 허름한 박스는 꼬깃꼬깃 구겨진 돈뭉치로 가득 차 있었다는군요. 길거리 작은 가건물에 옴치고 앉는 60대 구두미화원이었답니다.

28년째 남몰래 그렇게 계속해 오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금융위기 같은 시대의 격랑을 온몸으로 탔다는 것이지요. “그때마다 손님이 적어 벌이는 줄었지만, 첫 손님이 낸 요금을 저금통에 넣지 않은 적이 없어요.”

정보 유출로 주소나 이름을 전달 받을 수 없게 돼, 직접 전하지 못하자 구청에 기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군요.

어떻게 오랜 시간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우문에, 현답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돈은 제 것이 아닙니다. 커피 한 잔 덜 먹고 주면 되지요.” 그는 상상의 세계에나 있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천사가 아니었어요. 구두약으로 손이 검댕처럼 까맣게 칠해진 구둣방 아저씨였습니다.

그의 몸에서 꽃보다 더한 향기가 납니다. 깊은 골짝 비탈진 곳에 피는 꽃이 향이 짙고 더 은은하지 않나요. 고난 속에 피었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무심치 않군요.

그을음 앉은 시골집 흙벽에 걸린 푸른 등잔불만한 빛은 어디에도 있을 것 같아요. 사회가 메마르다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푸우 하고 한입 뿜어 눅여 주는 는개 같은 물기가 세상을 싸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함부로 비아냥대거나 어깃장 놓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꽃이지요. 사람의 마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끝없을 것 같던 어둠의 긴 터널도 끝이 보입니다. 춥고 음울한 겨울 너머엔 봄이고요. 봄을 기다리는 이에게 그예 3월은 오고, 정원엔 목련이 수백 송이 순백의 꽃을 터트릴 것입니다. 지등(紙燈)으로 세상을 밝힐 꽃들이지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