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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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알파고? 어디 있는 학교지?”

세기의 대결에서 파란을 일으키자 나온 세간의 질문이었다. 바둑특목고쯤으로 알았던 걸까. 며칠 전까지도 알파고는 우리에게 낯설었다.

1200여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이뤄진, 그것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었다.

이세돌 9단은 인간을 대표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 대의 컴퓨터라는 경이적인 계산력을 상대로 싸웠다.

바둑은 돌을 놓는 수의 복잡성에서 기계가 정복하기 힘든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반상에서 벌이는 경우의 수가 최대 10에 170제곱 가지나 된다. 우주의 모든 원자의 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1:1202. 인간이 엄청난 바둑 고수의 훈수를 받는 기계와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렀으니 이세돌, 그는 얼마나 힘겨웠을까, 고독했을까.

기계는 계산에 의해 바둑을 둔다. 10시간을 둬도 지치지 않고 화장실도 안 간다. 하지만 사람은 경기하면서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간에 따라 압박 받는다.

눈앞에 상대도 없다. 대리인을 통해 기계와 대결한다는 그 낯선 환경 자체가 생뚱맞다. 불공정한 조건이라 지적하는 이유다.

과연 알파고는 네 판을 이겼다. ‘인간이 기계에 지다니….’ 이세돌의 패배는 일시에 잠자던 인간의 불안과 슬픔을 깨웠다.

‘일자리를 빼앗기는 건 아닐까.’ 많은 직업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는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전망이 나왔다.

인정받고 싶은 사회적 욕구를 침탈당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개발 주체인 구글의 목표는 인류를 실업자로 만드는 게 아니다. 구글번역기, 스팸메일 필터 등 모두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것, 알파고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번 이벤트로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 착각이다.

정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인공지능을 사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기업이나 사람들이 그 이익을 독차지하는 데서 오는 ‘가난’이다.

좋은 데 쓰는 것, 인공지능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건가를 고민해야지 무조건 공포를 느낄 일은 아니다.

“로봇보다 자본주의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스티븐 호킹의 이 한마디는 심장하다.

바둑에 졌다고 인공지능에게 인류의 위상을 고스란히 내줄 거라는 우울한 감정을 떨쳐야 한다.

놀라운 일은 이세돌이 한 번 알파고를 넘은 것, 이 9단이 ‘신의 한 수’로 인공지능을 제압한 것. 인간의 ‘직관’이 인공지능의 벽을 넘음으로써 창의력이 기계의 완벽함을 이길 수 있었다.

역시 기계엔 창의성이 없다. 기계가 끝내 과거 데이터에 없는 상황에서 혼돈을 일으켰다. 감성이 없는 인공지능이 승패가 기운 상태에서도 끝까지 사람을 괴롭히다 결국 돌을 던졌다. 팝업 창에 뜬 문자, “알파고가 패배했습니다.”

한 번이지만, 과연 한국의 이세돌은 천재였고 그의 승리는 빛났다. 그 앞에 세계가 열광했다. 인공지능의 완벽한 계산 바둑에 패했으나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바둑엔 이겼지만 기계에겐 따뜻한 심장이 없다. 시를 쓸 수도 없다. 이세돌은 졌지만,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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