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백약이오름-백가지 생명 피워 숱한 목숨 살리고도 산은 언제나 겸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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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개의 약초 피웠다는 데서 이름 붙어

180만년 전, 남쪽 바다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 섬이 하나 생겼다.

 

섬 가운데 용암이 분출된 커다란 분화구를 가진 것이 한라산 백록담이고, 섬 여기저기서 잔열이 보글보글 끓어오른 흔적들이 오름이다.

 

‘한라산 꼭대기를 커다란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씩 퍼서 뿌렸더니 오름이 되었다는 제주 신화가 있다. 이토록 오밀조밀하게 오름을 잘 표현한 신화만큼이나 각 개의 오름들 중에는 신이 좌정한 자리라 여겨 신성시 여겨지는 오름부터 사연을 담아 더욱 애틋해진 전설을 동반한 오름들이 많다. 그리고 신화나 전설 대신 백가지 약초를 피워 숱한 생명을 살렸다는 백약이 오름이 있다.

 

백약이오름은 오름 전사면에 복분자딸기, 향유, 층층이꽃, 쑥, 방아풀, 쇠무릎, 초피나무, 인동덩굴, 꿀풀 등 의 온갖 약초가 숨어 있다. 또한 한라산과 이북지역에서만 자란다는 피뿌리풀도 자생한다. 이름 그대로 백가지 약초가 자라 백약이 오름이니 열감기와 두통에 효과가 있다는 피뿌리풀 같은 약초를 찾으러 수많은 어미들이 다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백약이오름은 제주시에서 97번 국도를 따라 대천교차로에서 송당리 방향으로 길을 잡은후 ‘오름사이로’라 불리는 금백조로 구간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

 

백약이오름은 민오름의 특성을 가져 산등성이에 키 작은 나무들과 초지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는 약 360여 미터로 제주 오름들 중에서는 크기와 규모가 자랑할 정도는 아니나 미려한 산세와 정상에서의 풍광은 여느 오름에 뒤지지 않는다.

 

성인 걸음으로 20분이면 완만한 산세를 발판삼아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오름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소떼들의 광경도 볼 수 있다. 오름의 남~서쪽 비탈 기슭에는 삼나무로 조림된 숲이 50m 정도 폭으로 둘러져 있다.

 

나선형 사면계단으로 된 탐방로를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높은 오름과 동거믄이오름, 문석이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오르면 동북쪽 사면으로 굽은 길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번엔 좌보미 오름이 보인다. 쉬엄쉬엄 빙 돌아 올라가는 길 사방에는 오름이 지천이다. 멀리 동쪽으로는 풍력발전기들을 넘어 성산일출봉이 우뚝 솟아있고 서쪽으로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등성이가 희미하게 드리웠다. 오름 아래에서는 볼 수 없던 오름 군락이 때로는 신라의 고분처럼 때로는 피라미드처럼 발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절경은 가히 장관이다.

 

정상은 분화구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큰 언덕이 하나씩 있다. 산에 오를 때는 단순한 봉우리를 보고 올랐으나 정상에 서보면 분화구의 한쪽 모서리만을 보며 올랐음을 깨닫는다. 분화구 둘레를 따라 걷다보면 발걸음이 멈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능선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다.

 

원형의 굼부리는 작은 넝쿨숲과 풀밭으로 이뤄졌다. 그 곳에 백가지 약초가 숨겨져 있음일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조차 보물 찾기를 하는 모양새다.

 

분화구를 에두르는 능선길은 400m 트랙을 연상시킨다. 10월이 되면 억새를 닮은 수크렁(볏과 시물-강아지풀과 비슷하게 생겼다)이 능선길을 수놓는다하니 가을 바람에 수크령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러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분화구 둘레는 주변 조망을 감상하며 15분이면 돌 수 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백약이 오름에서만 발견됐다는 멸종 위기 식물인 소황금(골무꼬촉 꿀풀과)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금백조로

 

동부 중산간 도로 중 하나인 금백조로는 가을철 억새 드라이브 코스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주도로인 비자림로(1112번)에서 백약이오름 방향으로 우회하면 바로 금백조로다. 이곳부터 시작된 은빛 물결은 굽이굽이 길을 따라 서귀포시 수산리까지 이어진다.

 

마치 숨겨진 비밀의 도로처럼 금백조로 구간에 들어서면 예상치 못했던 풍경들과 만나게 된다. 너른 평원에 펼쳐진 은빛 억새길이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기분에 젖게 만드는가 하면, 때때로 굴곡진 언덕길이 나타나 그 너머 풍경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름들 사이로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금백조로는 송당리 본향당 당신(堂神)인 금백조에서 이름을 따왔다.

 

특히 2012년 방영되었던 MBC드라마 ‘보고싶다’에서 유승호가 성산 일출봉이 내려다보이는 금백조로 일대에 차를 세우고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와보고 싶어하는 여행 필수 코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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