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기심 많던 '섬 소년'이 세계 정치 읽는 권위자로 우뚝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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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美 여행·유학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 키워
"제주 미래 위해 단합·세계화 주도할 지도자 절실"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65)는 참여정부의 외교 전략가, 외교안보 및 국제정치학계의 권위자, 햇볕정책 전도사로 불리워진다.


35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온 문 교수는 한국 학자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인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에 등재된 논문이 40편에 이르고 영어 논문도 200여 편이 넘을 정도로 열정적인 학자이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역임하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에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 통일·외교 분야의 핵심 인사로서 활동해왔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의 설계에 참여하면서 지난 2000년 6월 13일 분단 55년만에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간의 첫 만남과 2007년 10월 2일 두번째로 이뤄진 2차 남북정상회담을 그야말로 곁에서 지켜 본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 2007년 10월 이뤄진 2차 남북정상회담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만찬 당시의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 문정인 교수.

▲하고 싶은건 다 해야했던 학창시절=1951년 제주시 일도1동에서 오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문 교수는 제주북초등학교와 오현중학교,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제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문 교수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유도와 씨름, 배구, 투포환 등 다양한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로 운동을 즐겨했다.


또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해 고등학교 2~3학년때 한라문화제 백일장의 수필부문에서 2년동안 연속 장원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문 교수는 타고난 호기심과 집중력으로 성적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학과로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언어를 평생 공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문 교수는 재수를 선택, 이듬해 평소 관심이 많았던 철학 전공으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 문 교수는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우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부여한 미국 여행과 지금의 문 교수를 있게 만들어 준 미국 유학의 기회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미국여행과 유학=연세대학교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던 문 교수는 1972년 미 국무부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 학생지도자 회의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4개월간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와 관련해 문 교수는 “대학생활 당시 연세춘추에서 활동하다보니 졸업 후 신문사에 취직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일반적인 관례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우연히 하게 된 미국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여행을 마친 후 군대를 다녀 온 문 교수는 복학 후 졸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미국유학의 기회까지 얻게 된다.


1978년 대학 4학년이던 문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에서 한국의 여론을 살피기 위해 방문한 미 공화당의 전국위원회 관계자에 대한 안내와 통역을 맡았는데 그 인연으로 5년간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매릴랜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됐고 그 때 전공한 것이 평생을 연구하게 된 국제정치다.


그 후 박사학위 받고 미국 윌리암스 대학과 캔터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문 교수는 16년간 미국생활을 하다 1994년 국내로 돌아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햇볕정책 선봉으로 두차례 북한 방문=햇볕정책의 전도사라 불릴 정도로 문 교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시절 두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하면서 당시 급진전됐던 남북관계 정립에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6월에 이뤄진 1차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이뤄진 2차 정상회담 모두를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사람은 문 교수를 비롯해 LG그룹의 구본무 회장과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 등 총 3명이다. 이 중 관료나 학주 중에서는 문 교수가 유일한 인사였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문 교수는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최대의 관심사가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할 것이냐는 부분이었다”면서 “당시 참가자들은 사전에 김 위원장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김 위원장이 공항에 나와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공항 영접을 제외하고 이틀간의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회담 첫날인 13일에는 김 위원장이 아닌 최고인민회의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김 대통령과 대표단을 맞이했고, 14일 오전에도 별다른 일정이 잡히지 않아 당시 참가자들은 회담이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4일 저녁 김 대통령이 주관한 만찬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고, 그대로 만찬이 끝난 후 두 정상이 6·15공동선언문에 대한 구체적 협의에 들어가게 됐다.


2차 정상회담은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는 형태로 이뤄졌는데 북에서 대규모의 환영대회를 열어준데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와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상당히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10·4 공동선언이 이뤄졌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1차 정상회담때의 6·15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2차 정상회담의 10·4 공동선언은 각론에 해당된다”며 “10·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동선언 이후 그해 11월 남북한 총리와 부총리들이 만나 45개 협력 사안에 대해 합의했는데 그 내용이 다음 정권에서 이뤄지지 않았다”여 안타까워했다.

▲ 문정인 교수(뒷줄 가운데)의 고등학생 시절 가족사진.

▲35년만에 정년퇴임…제2의 출발=문 교수는 올해 1학기를 마지막으로 35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정년퇴임했다.


그러나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앞으로 5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계속 잡고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게 됐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센디에이고 분교의 석좌 연구원으로 임명돼 매년 1~3월 겨울학기에는 미국에서 보내며 현역이나 다름 없는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문 교수는 “35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다양한 활동도 해 왔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말도 많이 남아있다”면서 “앞으로 매년 한권씩 책을 쓰면서 이를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우선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일찍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력하면 기회가 오게 된다. 그리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베풀고 살면 그 이상이 돌아오게 된다”고 강조했다.


▲급격히 발전하는 제주…갈등 극복이 최우선=문 교수는 고향 제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문 교수는 “제주가 정말 예상한 것보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이제는 전국적이나 국제적으로도 각광을 받는 지역이 됐다”면서 “국제자유도시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평화의 섬 구상 등은 국내·외 많은 지역으로부터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제주가 발전한 만큼 제주도민들이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제주가 지금도 산남이다 산북이다, 동촌이다 서촌이다, 내지인이다 외지인이다 하며 이원화를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 교수는 “국제자유도시는 이에 따른 법과 제도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제주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것”이라면서 “원주민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제주도민들이 제주의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 교수는 제주도민들이 제주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스스로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열린 제주도민, 사회적 갈등의 해소와 도민의 단합, 그리고 세계화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지도자의 양성, 이것이야 말로 제주 미래에 가장 필요한 선결조건”이라고 밝혔다.


김두영 기자kdy84@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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