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자라 단명 인삼, 휴면해 장수 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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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삼(上)-한의사.제주한의약연구원장

혹시 ‘육구만달’이라고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심마니들이 잎가지 6개짜리인 산삼을 부르는 명칭인데 수령이 200년이나 된다. 요즘은 이런 산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만 산삼은 이렇게 오래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인삼은 6년근을 최고로 친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는다. 6년이 되면 속이 텅 비어버리며 죽는데 이로 인한 결주율이 40% 가까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경제성 때문에 대개는 4년근일 때 채취한다.

중요한 사실은 인삼과 산삼은 종이 같다는 것이다. 학명이 Panax ginseng C. A. Meyer로 동일하다.

과거 어느 시기에 야생에서 채취하던 산삼을 인공적으로 심어 보기 시작했으리라. 또한 이 과정에는 숱한 실패를 거듭하며 몇 대에 걸친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인삼의 재배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따라서 고문헌상에서 언급된 인삼은 모두 산삼을 의미한다.

신농본초경에 나온 ‘인삼’의 어원도 사람이 재배해서 인삼이 아니라 사람 모양과 닮았다 하여 ‘人參’이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본초서 문헌에 ‘산삼’이라는 표현은 따로 나와 있지 않다.

‘산삼’이라는 표현은 재배 인삼과 대비하여 근대에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16세기에 저술된 본초강목에 재배법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그 재배 시작 시기는 이 맘 때인 듯싶다.

 

▲ 인삼

한국의 경우 인삼의 대량 재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로 알려져 있다.

같은 기원 식물인데도 인삼은 6년 밖에, 산삼은 200년도 넘게 사는데(일곱 구짜리 산삼을 ‘칠구두루부치’라 하여 이것은 200년 넘게 친다) 이같이 수명이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삼의 나이는 대개 뿌리의 꼭지부분을 의미하는 ‘노두’를 보고 파악한다. 노두는 겨울에 줄기가 말라 죽으면서 생긴 흔적으로, 매해 한 번씩 생기는 그 흔적 덕분에 나이를 체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노두만으로는 정확한 나이를 파악할 수 없는데 그것은 산삼의 휴면하는 성질 때문이다. 성장을 멈추고 싹을 틔우지 않는 것이다. 이 휴면 시기만큼 노두가 자라지 않으며 나중에 노두갈이로 기존 위치와 다른 데서 또 다른 노두가 생기기도 한다.

산삼은 이처럼 서식환경이 안 맞으면 스스로 휴면을 해버린다.


산북의 약간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산삼은 햇볕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되는데, 주변 조건이 달라져 안 맞으면 그때까지 싹을 띄우지 않고 뿌리로만 지내는 것이다.

반대로 인삼은 인위적으로 차양 막을 쳐 햇볕도 조절해주고 거름도 주고 바람도 막아주며 한순간도 가만있지 못하게, 그렇게 쉼 없이 자라게 만든다.

육안으로도 이 둘은 쉽게 구분되는데 인삼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산삼은 삐쩍 말라있다.

하지만 그런 인삼이 6년이 지나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썩어버린다. 한 논문에 의하면 주요 약리성분인 진세노사이드가 산삼은 인삼에 비해 3~6배나 많았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산삼이 장수하는 주요한 비결은 바로 이 휴면과 느린 성장에 있지 않을까 한다.

▲ 산삼

이 사실은 우리 인간의 건강과 장수에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충분한 수면은 건강에 직결된다.

또한 과도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은 생명을 단축한다.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기자나 체육선수들의 수명이 짧고, 안정을 취하는 종교인이 수명이 높다는 통계가 그 방증이다.

쉼 없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때때로 휴식이 필요하다.

어차피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면 별 소득도 없이 진을 다 빼며 악착을 떨 것이 아니라 산삼처럼 차라리 쉬어 주자. 느림의 미학을 노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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