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누구나 존재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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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개인주의·낮은 자존감으로 혼자 시간 추구로 마음 평안 찾아"
▲ 아들 셋을 둔 주부 허진. 송악도서관 어머니독서회 회원이다.

▲책 소개=투명인간
솜씨 좋은 이야기꾼 성석제의 장편 소설. ‘김만수’ 그는 왜 어떻게 투명인간이 된 것일까. 이 소설은 역사 속에서 삶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투명인간이 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담자
허진=주부. 송악도서관 어머니독서회 회원. 음식과 뜨개질, 그림 등 손재주가 좋아 뭐든 만들고 꾸민다. 아들만 셋을 낳고, 목소리가 커진다는 순 제주도 아줌마.


현경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시인. 사계절 시적 상상력을 길러주는 제주의 자연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어 하며, 특히 억새가 피고 지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누구도 만수 같은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욕망이 판치는 세상이다. 물질과 쾌락, 편리함 등이 가치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이러한 가치가 세상의 본모습인 양 믿게 하는 매체들이 발호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소외 계층을 만들고, 소외된 그들은 투명인간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존재가치가 없는 굽은 나무가 결국은 세상을 지키는 경우도 많았다. 투명인간은 현대에도 세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존재일가? 민초들이 서로 투명인간을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금 여기, 제주에서 투명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의 일상은 어떠할까?

 

▲ 현경희.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이면서 시인이다.

현경희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이하 ‘현’):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허진(송악독서회 회원·이하 ‘허’): 앞부분을 읽을 때는 첫째 아이를 키우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작품의 시대 상황과 다르긴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추억을 더듬게 되고, 가족 간의 대화와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현: 이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지요?


여러 화자가 돌아가면서 펼치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화자 한 사람의 얘기가 끝날 때마다 그 이미지가 한 장의 사진처럼 남게 되고, 여러 화자의 서로 다른 그림을 이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열 명이 넘는 화자가 각기 다른 눈으로 만수를 말하고 있지만 선량한 면에 대해서는 공통적인 시선을 보입니다. 작가는 그 선량함을 들어 만수를 기억하게 하는 독특한 장치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재미있는 점은 만수를 바라보는 화자들 역시 그 사회에서 모두 투명인간임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투명인간이라는 관점이 같은데, 가족 사이에도 투명인간임을 느낄 때가 있지요?


허: 엄마라는 위치는 투명인간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번쯤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애들은 '엄마, 엄마'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고, 아내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친척과 이웃 관계들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현: 가족을 구체적으로 볼까요. 아빠의 자리는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허: 아빠라는 위치는 투명인간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특히 제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죠.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집안에서는 권위를 내세우는 제주의 아빠들은 자녀 사이에서, 또는 아내에게 투명인간화 되는 것 같아요.


현: 요즘 아이들은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허: 네. 책에선 한없이 착해서 만수가 투명인간이었다면 요즘 아이들은 투명인간이길 자처하지 않을까 싶어요. 입시와 개인주의, 낮은 자존감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고 거기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면서 스스로 투명인간이 돼 갑니다.


현: 일국의 국민으로서 시국 문제에 무관심해도 역사의 투명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전국적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입니다만 대정 지역의 참가자는 적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 지역이 지금은 시국 문제에 소극적인 듯합니다.


허: 정치적인 건 잘 모르지만 아마도 국가로부터 핍박받았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제의 침략, 4·3과 예비검속, 한국전쟁의 상처 등 근현대사에서 제주는 아픈 기억들이 많고 특히 대정 지역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근대에는 항일운동가나 삼의사비 등 정의로운 읍민들이 많았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정세는 만수 같은 투명인간들이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현: 제주 사회에서 우리가 돌봐야 할 만수 같은 투명인간들은 누구일까요?


허: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75세인데 오로지 일밖에 모릅니다. 동네 경조사도 특별히 관련되지 않으면 잊어버릴 정도로 밭에서만 삽니다. 세상과는 거의 고립된 세대라 할 수 있죠.


이분들은 일과 생존에 관해서만 신경 쓸 뿐 사회에 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재미있는 드라마를 통해서만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 투명인간화 합니다. 제주는 특히 더한 것 같습니다. 혼자서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들이 동네병원에 가기 위해 유모차를 밀고 위험하게 길을 건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또 하나 안타까운 일은, 밭과 집밖에 모르는 이 세대들은 TV 외에, 병원에서 친구를 만나고 세상일을 접합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나도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하나 둘 품을 떠나게 되면 이렇게 변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현: 우리 부모세대가 투명인간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허: 잘 아시다시피 제주는 부모가 자식과 따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투병인간이 되기 쉽지요. 가족 단위에서 보자면 장성한 자녀들이 사회의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예컨대 한 달에 1회 정도는 부모가 사는 마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찾아보고 어떤 행사가 있는지, 어떤 복지를 실행하는지 알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는 고령세대에 대한 교육에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가 고령자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또 ‘건강을 지키는 습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인문적인 강좌로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생활습관과 인생관의 변화는 먼저 알아야 가능해집니다. 일에 바쁜 제주의 고령자들이 참여하고 변할 수 있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상설 강좌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현: 책속 화자 중 가장 끌리는 인물은?


허: 큰언니 ‘금희’를 얘기하고 싶어요. 공부도 잘하고 중학교 갈 성적이 됐지만 큰 아들에 밀리고 집안일에 매여 살지요. 그러다 친구의 꾐으로 가출하여 옷 공장에 취업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삶을 택합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 삶을 살며 꿈을 이루기도 전에 변변하지 못한 남자와 결혼하고 끝까지 불행한 삶을 삽니다. 


저 또한 쌍둥이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성차별을 보며 자랐습니다. 오빠만 대접받고 살았고, 언니는 또 다른 엄마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언니를 보면 늘 가슴 한 켠이 아립니다. 이참에 고맙다고, 그렇게 견디고 버텨줘서 고맙다고 전화하고 싶네요.


현: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가요?


허: 아직 노인이 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요. 홀로 유모차를 끌고 병원에 가는 부모 세대에게 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각자 투명인간이 아닌 본연의 자아를 찾는 발돋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겪지 않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순진무구했던 시절의 ‘내’가 있다. 당시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고 내 가족이 전부였고, 이웃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이라 느꼈을 법하다. 처음부터 투명인간인 사람은 없다. 또 누구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회의 역할이요, 국가의 역할이다. 타인을 투명인간으로 방치하면 다음은 내가 투명인간이 될 차례를 받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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