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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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현/수필가

여러 해 전 세상을 등진 친구 제삿날이다.


기업을 운영했던 친구 L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은 매년 챙기면서도 정작 자신은 건너뛰기 일쑤였다. 소화가 잘 안된다며 병원에 갔더니 위암 4기 판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마음에 다방면으로 알아보았으나 회생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치료 및 방사선 치료 밖에 더 이상의 도리가 없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아직 어린 오누이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L의 심적 고통은 깊었다. 병증이 깊어지자 병원에 입원했다. 이미 회복이 어려운 상태일 뿐만 아니라 암 조직이 자라면서 위벽에 천공이 생겨 출혈이 계속되자 수혈을 하지 않으면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출근 전 L의 병상을 잠시 방문하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분노와 자책의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떠나야 할 것인지는 L에게 시급한 현안이 되었다. 말기 암의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해보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두려움이 인생을 휘감는 순간, 그는 엄청난 내면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뒤처리에 대한 방안이며, 마지막 운명의 순간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가 나와의 의논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희망했다. 인생 마무리를 위해 자신의 떠난 후의 여러 일들의 처리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L 부부, 의사와 나는 시점을 정해서 수혈을 중단하여 무의미한 연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자 L의 부모와 형제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본인의 굳은 뜻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여 운명을 준비하고 장례를 준비하였다.


주변에서 준비가 덜 된 채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사람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길이 있다. 마지막 순간 그 길 앞에 서는 운명을 피할 순 없다. 떠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무리에는 큰 울림이 있다. 누구든 마음먹기에 따라 후회 없는 인생마무리에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 이별, 상실, 고통, 죽음,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에 정말 소중한 것과 진정 의미 있는 인생은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인생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반추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뻐하며 살자고……. 그러면 타인에게 너그러울 것이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사랑하고 배려할 일들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또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 완성과 완미와 승격을 위해 심혼을 기울여 정진해야 할 필연이며 신비다. 건강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때에 언젠가는 다가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살면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되지 않을까. 죽음을 제대로 준비한다는 것은 곧 삶을 완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리된 생각을 가족들에게 먼저 밝혀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정신이 맑고 판단력이 있을 때 사전장례의향서나 사전의료의향서, 또는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두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리도 되며 가족 간의 분란도 예방할 수 있다.


오늘 한 장 써두면 어떨까.


‘현재의 의학에서 볼 때 제가 불치의 상태에 있고, 죽음이 다가왔다는 진단이 내려진 경우에는 제 생명을 연장시키는 조치를 일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나 스스로의 뜻에 따라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를 작성합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한 고민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것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운 이들과는 어떻게 이별할 것인지 꼼꼼하게 준비하자.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하며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이 ‘월빙’ 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떻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품위와 존엄을 지키며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당신의 남은 삶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고, 당신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고 彼岸의 세계로 떠나시는 분이 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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