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廣場)의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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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광장,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다. 서양의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그만큼 유럽 도시구조를 특징짓는 중요한 공간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도 대표적인 광장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광장은 도시 속의 공간이라는 입지와 상징성에서 시민이 주체가 되는 다양한 문화·예술·정치 등의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그게 정치적 성격일 때, ‘시민들이 어떻게 광장에 모이게 됐나?’고 묻는다면, 대체로 뭉뚱그릴 수 있는 답이 ‘지배와 저항의 메커니즘’ 쯤 될 것이다

두석 달에 걸쳐 주말마다 광화문 집회가 열리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광장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와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조성된 광장이다. 2009년에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됐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더니, 덩달아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도 맞불로 타오른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대결 양상을 띠며 분위기가 맹렬해 가고 있다. 매번 수십만에서 백 몇십만에 이르는 엄청난 군중시위임에도 놀라운 게 있다. 과거 독재정권 때처럼 최루탄을 터트리거나 물대포 세례를 퍼붓지 않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위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되는 데서 보여 주고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쓰레기를 줍고 뒤치다꺼리하는 손이 있어 시위 뒤, 광장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현장을 고스란히 비추니, 이럴 때 TV만큼 사실적인 게 없다. 전 세계가 놀라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래면 더께가 눌어붙는 법. 양측 시위 세력 간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면서 광장대립이 거칠어 간다. 부딪치고 폭언을 쏟아 내는 등 소란이 벌어지면서 까딱하다 아수라장이 될 뻔한 위기의 순간들이 노출되고 있다. 법치주의 훼손과 시민의식의 후퇴로 이어질 것 같아 우려된다. 두려운 게 양극화에 따른 국론분열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이 광장으로 나온다. 그들이 시민들에게 촛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고 부추기고,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고 외친다. 심지어 소속 정당 국회의원들에게 동원령까지 내린 적이 있다. 내심 촛불 민심을 앞세워 헌재를 압박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촛불을 등에 업고 나설 뿐, 앞에서 이끈 적이 없었다. 탄핵 결정은 헌법기관인 헌재에 맡길 일, 광장에 나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극도로 자제하는 정치인도 있다. 그게 맞다.

촛불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이뤄낸 것도 많지만, ‘촛불이 국민의 명령’이란 인식은 천만부당하다. 촛불 빼고 나머지는 모두 의롭지 않은 건가. 그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다. 무능한 개인에 대한 고발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광장에 나가 네 편 내 편 가르는 식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짓이다. 촛불 대 태극기 하는 식의 세(勢) 대결에 기대선 안 된다.

왜일까. 시위 현장에 촛불을 들고 앉아 있는 대선 주자의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태극기를 들고 격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도 참 한심스럽다. 이번 일은 그들이 광장에 나설 게 아니다. 참고 지켜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게 바로 탄핵 판결 뒤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명분 축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헌재 판결 뒤, 승복 선언은 정치인으로서 의무이자 책임이니까.

세력 간 대결이 폭발 직전으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흡사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다. 이를 바라보며, 진보·보수의 원로들도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날 선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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