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집 ‘성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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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오라통기타동호회의 연주가 꽉 메운 장내의 흥을 돋운다. 7인조 나이 지긋한 연주자들의 얼굴에 시종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진짜 비 날씨다. 언 땅을 촉촉이 적시는 젖줄 같은 비다. ‘이 빗속을~’ 하고 어떻게 날씨에 맞춰 선곡(選曲)했나. 3월의 비는 푸른 생명을 약속하는 녹우(綠雨)다. 이어진 사랑봉사단의 합주,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사랑의 집 ‘성심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나나나난 나나나나나~’,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10년 전, 개원식 날엔 꽃샘에 발 시리고 손 곱더니. 예삿일이 아닌, 전조(前兆)였다. 지적·발달장애인시설로 설립 인가 받아 문을 연 성심원. “개원해 일 년 내내 입소자가 없어 참 막막했습니다. 복지법상 유료시설로 돼 있어요. 실비이용시설이란 이유로 입소비용이 자연히 수익자 부담으로 됐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을 회고하는 김호성 원장, 팔순의 지긋한 연세에 눈시울을 붉히며 목소리가 떨린다.

건물만 뎅그러니 지어 놓고 정식 개원을 못 하고 있었으니, 오죽 애탔을까. 슬하의 1남 2녀가 장애인이라 과수원 처분하고 땅 사들여 큰마음 먹고 시작은 해 놓았으나, 그 지경이 되니 한숨짓다 먼 산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렸을 테다.

명찰하신 하느님이 굽어살피셨을까. 한둘씩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입소자가 늘어 갔다. 하지만 끝까지 발목을 잡은 게 재정이었다. 비품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데다, 직원 인건비 지급은 엄두도 못내 전전긍긍할 수밖에. 그나마 텃밭을 일궈 급식에 충당한다고 원장 가속은 흙 묻은 손 씻을 날이 없었다. 오이, 호박, 고추와 참외를 따 들여 한여름 텃밭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풋풋한 푸성귀를 캐고 탐스럽게 달린 열매를 따는 순진무구한 이용자들을 바라보며, 김 원장은 혼잣말을 했단다. ‘그때, 내가 참 잘 참았구나!’ 성심원이 겪은 10년은 눈물겨웠다.

지적·발달장애는 장애의 다른 영역에 비할 바 아니게 어렵다. 가족이 잠시도 곁을 비울 수가 없다. 도우미는 한계다. 경우에 따라서는 24시간 곁에 있어야 하므로 가족이 아무 일도 못 한다.

도내에 지적·발달장애인 시설이 몇 군데밖에 안 된다. 이용자가 해마다 급증하는데 수용할 시설이 태부족이다. 성심원의 경우도 40명 정원이 넘치는 바람에 대기자가 줄 섰다는 것. 성심원의 개원 당시를 돌이키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기념식이 이뤄진 실내가 사람들로 빼곡해 성심원의 충만한 오늘을 말하고 있다. 자료집을 들여다본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에 실린, 어간 실시한 프로그램이 100여 회에 이르고 있어 놀랍다. 지적·발달장애인들을 이렇게 따뜻이, 체계적으로 보듬어 안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성심원의 밑바닥으로 콸콸 흐르는 웬 물소리가 난다. 사랑의 강물 소리였다. 가슴 뭉클하다.

얼마 전, 사랑의 집 ‘성심원’이 앞뜰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우리 둘레는/ 차라리/ 바람벽이어도 좋아라// 허름하지만/ 어머니 자락만한 사랑으로/ 바람 앞에도/ 포근한 바람벽// 한 움큼 햇살이 머무나니/ 안 보여도 보이고/ 괴로워도 슬퍼도 웃는/ 어미가 그 새끼 품 듯/ 사랑이 사람 안아// 네가 나의 이름 부르고/ 내가 너의 이름 불러/ 꽃으로 피어나는// 사랑의 집/ 우리들의 둥지’ (김길웅의 ‘사랑의 집’ 전문)

밖엔, 아침부터 시작한 비가 오후로 이어지고 있었다. 단비가 오석 시비(詩碑)를 말끔히 씻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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