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려 보낸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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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식/수필가

천혜향 하우스에 비둘기 한 쌍이 날아들었다. 문을 열어놓고 조용하게 나가주길 바랐다. 그러나 비둘기는 따뜻한 하우스 안에서 깔아놓은 볏짚에 이삭을 주워 먹으며 바깥세상은 관심조차 없다. 천혜향도 이미 익어가기 시작했으니 큰 피해는 없을듯하여 묵인해 두기로 했다.


비둘기가 땅에 앉아 있으면 흙 색깔과 구분이 잘 안 돼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궁금해져 우~우~하며 행방을 쫓는다. 그러면 비둘기는 불쑥 장대 위로 올라앉아 위치를 확인해 준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실룩거리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서로가 보는 것으로 무사 안녕을 확인하고 자신 일에 열중한다.


한 번은 일을 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비둘기를 놀려주고 싶었다. 막대기로 쇠기둥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러대자 혼비백산하여 날아가다가 천장에 부딪혀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달려가 한 마리를 생포했는데…. 문득 “산 짐승은 잡지 말라”는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밭에 가보니 장끼 한 마리와 까투리 서너 마리가 창고에 보관해 둔 콩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리를 지르자 엉겁결에 장끼 한 마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몇 번 휘두르니 바닥에 떨어져 내 손에 잡혔다. 아내는 살려주자 했으나, 나는 일부러 꿩 사냥도 하는데 잡은 꿩을 다시 놓아주자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장작불에 꿩고기 파티를 했다. 그 이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해는 되는 일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산짐승은 함부로 잡는 것이 아니라며 엄청 야단을 맞았던 일이 있다. 불길한 생각에 손에 잡고 있던 비둘기를 얼른 다시 놓아주었다.


어느 덧 겨울이 지나고 춘삼월이 됐다. 여전히 비둘기 한 쌍은 하우스 안에 살고 있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봄날이 되었으니,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면서 살아가라고 문을 열어두고 일을 했다. 하지만 한 마리만 날아가고 다른 한 마리는 하우스에 남았다.


아내는 하우스 안에 여유 공간에 콩 씨를 뿌렸다. 농장에 들어가 보면 항상 비둘기는 콩 씨를 뿌린 근처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닌가. 막대기로 기둥을 두들기며 야단을 쳐 보지만 이제는 지형지물에 익숙하여 안하무인이 되었다. 요리조리 피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더 내버려 두었다가는 콩 싹이 나오기 전에 비둘기 밥이 될 것이 자명하다. 복실이를 풀어놓으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으나 그러면 비둘기의 생명을 보장할 수가 없다.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생포하여 방생하기로 했다. 운동화를 갈아 신고, 밀림지대의 타잔처럼 지팡이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비둘기를 몰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잠시 숨을 돌리노라면 비둘기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장대에 앉아 나를 주시하며 입을 크게 벌리고 헉헉거린다. 이러다가는 하루 종일 쫓아다녀도 비둘기 잡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피차 힘들 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번뜩 떠올랐다. 사력을 다해 다시 몰아붙이자 예상대로 몇 미터 날아가다가 더는 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비둘기를 생포하여 가슴을 만져보니 따뜻한 체온이 내 손으로 전류 되어 흐른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아버린다. “산짐승은 잡지 말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둘기도 살기 위해서 콩을 주워 먹었고, 콩 씨를 뿌린 나도 목적은 하나인데 악연으로 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밖으로 나와 짝꿍도 만나고 창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살라고 잡았던 손에서 살며시 힘을 뺀다. 조금 떨어진 지붕 처마 밑에 앉아 한참 동안 유심히 나를 쳐보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다. 날려 보낸 지 3일째 되던 날 아침 하우스 문을 열려고 들어서는데, 한 쌍이 비둘기가 하우스 입구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먼발치에 서서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분명히 내가 날려 보낸 비둘기였다. 문안인사라도 왔는가. 비둘기 한 쌍이 하우스 주위를 유희하며 한참을 머물다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비둘기가 놀던 나뭇가지에는 꽃봉오리가 뾰족하게 고개를 내민다. 올겨울에도 저 나무에 열매가 노랗게 익을 무렵이면 또다시 따뜻한 겨울을 나려고 찾아오지 않을까. 오늘도 먼 하늘을 보며 하우스 안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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