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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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선/수필자

남편과 아들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남편에게 소감을 묻자 그저 그랬다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들 또한 아빠랑 그냥 푹 쉬고 왔다는 대답과 함께 여행밴드에 사진을 올려놓았다고 덧붙인다. 나라별로 제목을 붙인 앨범들 사이에 ‘라오스’나 ‘루앙프라방’이 아닌 ‘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앨범이 만들어져 있다. 앨범 제목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남편과 아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삐걱거렸다. 남편은 편안한 여행을 선호하는 반면, 아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는 여행의 모든 일정을 아들에게 맡겨 보라고 말하고, 아들에게는 일에 지친 아버지를 위한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 엿새 동안의 여행을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던 아들이 떠올랐다.


아이는 학교를 그만 두고 싶어 했다. 야단과 온갖 회유를 수차례를 반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아들에게 남편은 분노했고 나는 두려웠다.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은 늘 팽팽했다. 한 쪽에서 힘을 조금만 더 주면 ‘툭’하고 끊어져 버릴 것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그날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남편은 화가 나 있었고, 그 화살은 아들을 향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갔다. 맨발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유학을 떠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새벽녘에 빈자리가 느껴져 잠에서 깨었는데 남편이 없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보니 남편은 아들의 침대위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무처럼 강한 줄 알았던 그가 아들의 빈 방에다 자신을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안방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난 다음날 후원에 들렀다. 옥류천과 태극정을 지나 작은 논이 있는 창의정까지 걸어왔을 때 동영상 도착 알림 음이 울렸다. 탁발을 청하는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는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탁발을 마친 승려들의 행렬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받은 공양물을 아이들에게 다시 나누어주는 스님들의 등 뒤로 라오스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내 염려와 달리 남편과 아들은 어색하지만 제법 잘 지내는 듯 했다.
 

여행지에서 수시로 보내오는 사진과 짤막한 영상들을 보다가 느티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장의 사진들 중에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사원인 왓 시엥통의 외벽에 있는 ‘생명의 나무’가 시선을 붙들었다. 생명의 나무 아래에는 호랑이와 사슴, 새 등 다양한 생물들과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숱한 생명을 품어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그 나무의 사진 위로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내가 앉은 느티나무위로 한낮의 고요가 내려앉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앨범 속에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대의 자전거. 맥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찍은 사진. 호텔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남편과 아들의 셀카 사진들. ‘아빠, 동영상 찍고 있어요. 한 말씀 하시지요.’라는 아들의 말에 손은 한 번 흔들어 보이는 멋없는 동영상도 있다. 다른 영상을 누르자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영상 찍는다는 말에 아들이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며 껑충거리며 뛰어 온다.

 

“넘어질라, 조심해라.”

 

스물일곱 살의 아들에게 던진 남편의 말을 나는 몇 번이나 따라 되뇌었다. ‘아들아. 넘어질라, 넘어질라….’

 

10여년이 넘는 객지생활을 접고 아들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불이 꺼져있던  이층 방이 환하다.
 

남편과 아들이 머리를 맞대고 골랐을 ‘생명의 나무’가 그려진 등에 불을 켠다. 이백 예순 석장의 사진이 들어있는 ‘아버지와 나’ 방문을 슬그머니 연다.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들의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오늘따라  유난히 등불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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