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찾는 길, 역사를 복원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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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홍보대행사 컴101 이사/전 중앙일보 기자

“배가 45도 기울었어.”

세월호 수습자인 조은화 양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입니다. 조은화 양의 이야기가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조양은 아픈 오빠를 보며 일찍 철이 들었고, 어디를 가던 엄마에게 중간중간 문자를 보내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 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씻는 중에도 엄마를 변기 위에 앉혀놓고 학교에서 지낸 일들을 얘기했고, 엄마가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줄 정도로 정감 있고 살가운 딸이었다고 합니다. 공부도 잘해서 1등을 도맡아 했고, 수학을 좋아해서 회계 관련 공무원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조양이 싸늘한 바다속에서 지낸 기간은 1135일입니다. 그 기나긴 세월 물속에 감금돼야 했던 이유 중에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가 있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조양의 유해는 권력에 의해 이름을 찾을 기회를 오랫동안 박탈당했습니다.

제주 4·3의 피해자인 백조일손지묘의 유해 132구는 아직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슬포 섯알 오름에서 학살당하고 집단 매장된 그들은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시신 인도조차 거부당했습니다. 1950년 8월 20일 새벽에 학살돼 거의 6년이 지난 1956년 5월 18일에야 유가족들에게 유해를 수습하는 것이 허락됐습니다. 하지만 유해들이 뒤엉켜 있어 온전한 유골을 맞출 수가 없어서 한데 안장하고, 작은 봉분만 132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후손들은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지만 죽은 이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지는 못한 거 같습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사고 발발 원인을 출항 이전 단계부터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설치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어려운 여건에서 충분히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는 조은화 양이 진정한 이름을 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조양은 왜 “배가 45도 기울었어” 이후 문자를 보내지 못했을까요. 효녀였던 그가, 부모를 기쁘게 하던 그가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야 진정으로 이름을 회복하게 됩니다.

도에서는 인재개발원과 도 교육청, 4·3평화재단이 함께 4·3 교육을 강화하기로 협의하고, 도내 학생과 일반인, 국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4·3길을 알리고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는 4·3 현장체험 교육이란 이름으로 올해 125개교가 참여할 것입니다. 안덕 동광길과 대정 섯알오름 지역을 해설하는 고혜자씨는 “학생들이 대정의 백조일손지묘에서 매우 진지해진다”며, “예비검속으로 사람들을 구금하고 학살한 것은 터무니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제주 4·3을 알리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화해와 상생을 넘어 인류 보편의 평화와 인권이라는 목표에 다가가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숭고한 정신이 길러질 때 희생자들은 진정 제 이름을 찾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와 4·3 피해자들의 이름은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고 ‘역사적인 개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이름을 복원해야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정상화돼야 역사는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김춘수의 시 ‘꽃’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로 바꿔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의 꽃’을 발견하는 행복한 역사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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