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제주 어민들 빛으로 소통한 '도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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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주도로 안전 항해 위한 등대 설치
▲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 포구에 있는 도대불. 완만한 곡선미와 세련미로 수월봉 바다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도대불로 꼽히고 있다.


도대불은 제주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등대다.

전기가 없던 시절, 어부의 아내들은 안전한 귀항을 위해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이를 갯불이라 불렸다.

일제시대부터 도내 포구마다 도대불(등명대)이 설치됐다. 서양식 등대가 관 주도로 건립된 반면, 도대불은 어민들이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민간 등대였다.

육지의 전통 포구는 만(灣)이 형성된 모래갯벌로 이뤄져 배를 대는 데 큰 위험이 없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용암지대가 널려 있는 제주에선 밤마다 위치를 알려줄 불빛이 필요했다.

도대불은 어민들의 주체로 설치하면서 축조 방식이나 모양은 제각각이다.

높이는 2~3m 내·외이며, 계단이 있는가 하면 사다리를 놓고 등탑 위를 오르기도 했다.

모양은 원통형, 마름모형, 항아리형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각 마을에 있는 석공과 주민들이 동원돼 돌을 직접 나르고 쌓으면서 획일적인 모양을 갖추지 않고 있다.

불은 어떻게 밝혔을까? 솔칵(송진이 많은 소나무가지 방언)과 함께 생선기름, 석유를 이용했다.

석유는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워 대다수 어촌에선 상어의 간에서 짠 기름과 고등어 등 각종 생선의 내장을 썩힌 후 끊여서 만든 생선기름을 주로 사용했다.

도대불의 어원은 돛대처럼 높은 대(臺)를 세워 불을 밝혀서 ‘돛대불’에서 나왔거나 등대(燈臺)의 일본어인 ‘도우다이’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조천읍 북촌리 도대불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탑 위 비석에는 ‘대정(大正) 4년(1915년) 12월 건립’과 함께 ‘燈明臺’(등명대)라고 새겨져 있다.

1967년 7월 구좌읍 하도리 도대불이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보면, 바닷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인 1970년대까지 도대불이 사용됐다.

제주 어부들의 고단한 삶에 불을 밝히고 길잡이가 됐던 도대불은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다.

▲ 1915년 세워진 조천읍 북촌리 도대불은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탑에는 설립연대를 알 수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밤바다에서 갈치와 고등어를 잡았던 어민들을 위해 불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불 담당은 ‘불칙’이라 불렸다.

그런데 유리상자에 넣은 호롱불은 비바람에 꺼질 때가 많았다.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먼저 달려가 불을 다시 밝혔다. 소등은 맨 마지막에 들어온 배가 맡았다.

이덕희씨가 1997년에 쓴 ‘제주의 도대불’에는 모두 17개의 도대불이 있는 것으로 소개됐으나 해안도로 개설과 방파제 공사 등으로 절반 가까이 소실됐고, 현재 복원된 것을 포함해 10개가 남아 있다.

일부 도대불은 잘못 복원돼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제주 유일의 역사적 산물이지만 단 한 곳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방치되거나 훼손되며서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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