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뜻을 멀리 두게 하는 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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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한의사·제주한의약연구원장

어릴 때와 달리 사춘기로 아빠와 서먹한 사이가 된 딸아이가 중간고사를 임박하고서 나를 급히 찾았다. 지난번 수학시험을 긴장으로 망쳤는데 이번 중간고사 때는 이를 해결할 만한 좋은 한약이 없느냐는 SOS였다.

긴장과 불안은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쇼크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인체 조절 기능이 일순간 상실되기도 한다. 극심한 정신적 긴장으로 갑자기 맥박수와 혈압이 낮아지면서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이 떨어지는 것이다. 식은땀과 함께 피부가 창백해지고 눈앞이 하얘지며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 시험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증상을 예방하는 좋은 처방 중 하나가 총명탕이다. 보통 학습력을 증강시킨다고 알고 있는 수험생의 대표적 처방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총명탕을 잘 잊어버리는 것을 치료하고 오래 복용하면 하루 천 마디 말을 외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약재 구성을 보면 머리를 맑게 하는 석창포와 함께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원지와 복신이 들어 있어 안신지제가 주된 약재라 할 수 있다. 사실 마음 안정 먼저 되어야 집중이 가능하니 총명해지는 탕약의 효능을 위해선 당연한 약재 구성이라 하겠다.

‘원지(遠志)’는 말 그대로 조급하지 않고 뜻을 멀리하게 해서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한약재 ‘원지’는 원지(Polygala tenuifolia Willdenow)의 뿌리로서 안신약(安神藥)에 속해 정신을 안정시키고 머리를 맑게 하며 담을 제거하고 울결을 푸는 효능을 가진다. 경계(놀람), 건망, 몽정, 불면 등을 치료한다.

중국에서 주로 수입되는 원지는 몇 해 전 농촌진흥청에 의해 국내 재배법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원지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는 강하지만 고온에 약해 해발 350m 이상 중산간지의 경사지에서 물 빠짐이 좋은 토양에서 재배해야 한다고 한다.

제주에는 농산물원종장에 식재되어 있어 원하면 분양이 가능하다. 동의보감에는 원지의 향약명으로 ‘아기풀불휘’로 되어 있지만 원지와 ‘아기풀(Polygala japonica Houtt.)’은 기원이 다르다.

‘총명(聰明)’이란 말의 어원은 귀가 밝고 눈이 밝다는 의미이다. 멀리 있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으면 총명한 것이다. 하지만 청력이 안 좋아도 자신을 비우면 세상일이 다 들리고, 눈이 안 좋아도 지혜로우면 앞일을 훤히 볼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총명함이 아닐까.

불안과 긴장은 앞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을 걸어간다면 누구나 불안하고 긴장할 것이다. 아집을 버리고 귀를 열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혜가 쌓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생겨날 것이다.

딸아이의 불안, 긴장은 수학 문제로 인한 것이니 어려움이 없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이 근본적 해결 방안일 터. 다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수학문제보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 딸아, 아빠로서는 수학 고득점보다 귀를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 지혜롭게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길러 나가 주길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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