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할망당과 광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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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제주펜클럽 회장

제주 해안 마을 곳곳에 할망당이 있다.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어부나 해녀들이 무사히 작업을 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만선의 기쁨을 바라며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육지의 해안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로 물질을 떠나야 했던 해녀들이라면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을 빌었을 것이고, 사고 없이 돈을 벌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제물을 가지고 와서 공을 들였던 곳이다. 그들의 바람과 정성은 현대적인 종교 시설에서 신에게 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학교 울타리 안에 할망당이 있다. 학교와 할망당이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과학을 가르치는 학교와 할망당이 이웃하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외래 종교가 100~2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면 제주의 할망당의 역사는 몇 백년인지, 몇 천년인지 모른다. 수산진성이 세종 때에 만들어졌다니 58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수산진성 안에 수산초등학교가 있으며, 과수원 한쪽에 성을 끼고 진안할망당이 자리잡고 있다. 진안할망당은 에밀레종이나 관덕정이 사람을 재물로 바쳐 완성됐다는 전설처럼 13세의 어린 여자 아이를 바쳐 완성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쌓은 성이 자꾸 무너져 내려 점을 쳤더니 정결한 여자아이를 바쳐야 파괴되지 않겠다는 점괘가 나와 여자 아이를 제물로 바쳤고,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수산진성 안에 만든 당이어서 진안할망당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빌면 시험에 붙거나 재판에서 이긴다는 속설이 있어 지금도 새벽을 틈타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전설만 남은 당이 있다. 광평당이다. 아파트 건설로 광평당은 사라져 버렸다. 아파트 정원 한 귀퉁에 제단도 없이 울타리만 만들어져 남아 있다. 입구에는 나옹 선사라는 고려의 선승이 지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로 시작하는 시가 시비에 새겨져 서 있다. 당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광평당은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멀어졌다. 땅값이 오르고 부가 축척되고 병원이 몰려들고 이젠 광평당에 가서 빌 소망이 사라진 탓일까?

300여 년 전에 현치적이라는 사람이 노형 마을을 개척하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오도롱에 살던 유명한 풍수전문가 고전적에게 꿩을 자주 갖다 주어 고맙게 여긴 고전적의 지시대로 집터를 잡아 살았다. 길가에서 만난 배고픈 여인을 위해 밥을 가져왔는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려 신이라는 걸 깨닫고 밥을 올려 제사를 지냈다는 광평당의 전설이 남아있다.

제주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혼을 보여주던 전설의 장소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편리한 삶을 위해 무자비하게 개발되고 있다. 해안마을 조성의 초석을 놓았던 샘물도 사라지고, 곶자왈이나 중산간 초원이 골프장이나 전원주택지로, 호텔, 펜션 등이 들어서는 바람에 제주의 원형을 잃은 지는 오래다. 초가집만 지으라고 할 순 없지만 제주의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건축물은 자연과 어울리도록 설계도를 반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 편의 시설이나 도로 건설 등은 당연하지만 지나친 개발은 제주를 망치는 일일 수 있으며, 개발이 제주의 문화나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제주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지키는 일 중에 조상들의 애환이 녹아있는 당을 살리는 일도 포함됐으면 좋겠다. 설령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할망당은 소중한 자산이다. 송당 본향당이나 화흘당, 김녕의 궤내기당처럼 보존될 수 있다면 좋겠다. 제주의 유산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지켜보기만 하는 일은 난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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