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실-볼품없는 탱자라도 약재로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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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열·한의사·제주한의약연구원장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로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회수는 황하와 양쯔강 사이에 있는 중국 3대 강 중의 하나로 중국을 강남, 강북으로 나누는 기준이다. 대체로 제주도와 위도상으로 비슷하다. ‘지(枳)’를 우리는 ‘탱자’로 해석하는데 동의보감에도 ‘지실(枳實)’의 향약 명을 ‘탱자 열매’라고 한다.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귤(Citrus 속)과 탱자(Poncirus trifoliata Raf.)는 서로 종이 다른데 다른 환경에 옮겨 심었다고 과연 종이 바뀔까.

생물학적으로 종이란 상호 교배가 가능한 집단으로서, 다른 종과는 교잡이 불가능하다. 귤과 탱자는 ‘종’이 다를 뿐 아니라 ‘속’도 달라 서로 먼 팔촌뻘이다. 수만 년에 걸친 것도 아니고 당대에 종이 바뀌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한의학 문헌에도 강남(회수 이남)에는 귤과 탱자가 모두 있고 강북에는 탱자만 있고 귤이 없는 것을 보면 이들은 변화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종이 다른 식물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한약재 지실은 탱자의 어린 열매를 말린 것이다. 기를 돌리는 힘이 강하여 파기소적(破氣消積)하는데 탁월하다. 스트레스 등으로 기가 뭉치게 되고 심하면 유형의 덩어리(積)를 이루는데 이러한 기를 풀고 적(積)을 없애는 효능을 지닌다. 배가 더부룩한 창만과 명치가 답답하고 아픈 것을 치료하며, 숙식(宿食)을 소화시킨다. 피부가 심하게 가려운 데에도 쓴다.

파기(破氣)의 작용이 강해 정기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몸이 허약한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성질이 차서 몸이 더운 체질에 더 알맞다.

우리 약전에는 지실을 ‘탱자 열매’라 하고 있지만 현재 중국 약전에는 ‘광귤나무(산등)의 열매’로 되어 있다. 탱자는 중국에서 ‘구귤(枸橘)’이라 불리며 별도의 약재로 취급한다. 광귤나무(Citrus aurantium L.)는 줄기에 가시가 있으며 두꺼운 껍질로 과피와 과육이 잘 분리되지 않아 먹기 어렵다.

‘귤화위지’란 말의 ‘지(枳)’도 탱자가 아니라 광귤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일반 귤에서 탱자나 광귤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枳)’ 자를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의 대명사로서, 귤이 회수를 넘으면 시고 먹기 힘든 귤로 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대부분의 과실이 제주에서 재배하면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작고 단단해지듯이.

같은 종이더라도 서식 환경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한약재에서 흔한 일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감초의 경우 한국에서 재배하면 유효 성분이 잘 안 나온다. 반대로 인삼을 외국에 가서 재배하면 우리 것만 못하다. 제주 귤도 도내 동서남북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어떤 종인지 못지않게 산지가 중요하며 산지 표시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강남에서나 강북에서나 탱자는 탱자이다. 또한 탱자는 과실로서 상품성은 떨어져도 약재로서는 유용한 가치를 지니는 귀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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