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하는 곰과 자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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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수목들은 한겨울 채비하느라 잎들을 떨구고, 한파에도 늠름한 자태로 묵언 정진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렇지만 나목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수목들이 잎을 훌훌 떨어버리는 것은 최소한의 생명력을 유지한 채 동면에 드는 것이다. 나목은 단순히 잠자는 것이 아니다. 나목은 내면의 고뇌를 승화시켜 새로운 봄을 열기 위한 설계작업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인생 여정을 반추해야 되는 순간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우리도 그동안 입고 있던 누더기 마음을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내일을 열기 위해 고독과 고통을 감내·음미하면서 미래를 향한 동면에 들어야 할 순간이다.

 

곰은 동면기간 동안 체온이 30℃ 정도이고, 대사량이 평소 쉬고 있을 때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면에 북극땅다람쥐는 체온이영하 3℃ 정도까지 떨어지고 대사량이 2%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북극땅다람쥐의 동면기간은 죽은 상태이다.

 

일 년 중 반을 동면으로 보내는 곰들도 있지만, 그들의 근육이나 골밀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인간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잠을 자거나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량이 현저히 줄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곰의 근육량 보존 능력에 대한 연구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체는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체는 쓸모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근육과 뼈의 조직을 분해·재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면하는 곰에서는 이런 재활용 메커니즘이 억제되어 있다는 사실이 규명되고 있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은 어떤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지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만일 이 과정이 규명·정리되면 새로운 골다공증 치료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또한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영감을 얻기 위해 곰의 동면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을에 곰들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들을 포식하는 등 다양한 먹잇감을 먹고 지방을 비축한다.

 

한 학술지에 곰이 동면을 할 때는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 상태, 즉 당뇨병에 걸린 상태라는 연구내용물이 실린 바가 있다. 그 결과 신체는 혈당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해 비축한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이렇게 동면기간 동안 서서히 체지방을 소모하기 때문에 굴에 들어갈 때 뚱뚱했던 곰이 이듬해 봄에 나올 때는 날렵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인슐린 민감성도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뇌 속 온도조절장치는 체온을 5∼6℃ 정도도 조절할 수 있는 융통성이 없다.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이런 능력을 터득하는 대신에 불의 문명을 꽃피웠다. 그래서 극한지방에서도 불의 문명으로 삶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동∙식물을 품은 자연은 인간에게 영원한 모성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과학교재이며 최고의 선물이다. 자연에는 어길 수 없는 질서가 있다.봄,여름,가을,겨울 등 계절의 질서가 있고, 뿌려서 가꾼 대로 거두는 수확의 질서가 있다.

 

질서와 조화를 잉태하고 있는 자연의 선물, 동면하는 곰도 인간의 생활에 빛이 되고 건강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물을 과용하거나 악용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배은망덕의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자연은 침묵 속에 인간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이 침묵 속에서 창조의 비밀과 사랑의 신비를 캐낼 수 있다. 자연 자체가 원초적인 침묵이기 때문에, 자연의 실체를 인식하려면 무엇보다도 침묵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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