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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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숲에 역사가 있었다. 목장으로 방치됐던 한라산 기슭이 애초의 숲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한라생태숲’ 팸플릿 속의 낡은 축사를 보고 있다. 도당지붕이 벌겋게 녹슬고 광활한 땅이 가시넝쿨로 얽히고설킨 덤불숲이다. ‘생태숲 조성 후’는 숲으로 울울한 오늘의 정경. 전후 대비가 선명해 눈길을 끈다. 근 10년의 준비를 거쳐 2009년 개원한 국내 최초의 생태숲. 탄생 이력이 놀랍다.

11월 중순께, 춘강 ‘글사모’ 회원들과 문학기행으로 찾은 숲은 가을의 끝자락을 딛고 겨울의 문턱을 서성이고 있었다. 낙엽 수북한 숲은 이미 가을의 끝물이다. 해발 700m, 평지와는 기후가 확연히 달라 여린 햇살에도 차가운 기운이 이마로 온다.

한라산 서북 사면에 자리한 196ha의 광대한 면적에 저지대 난대성식물부터 고산지대 한대성식물까지 한곳에서 볼 수 있었다. 훼손된 숲을 되살려 한라산 자연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당초의 탁견(卓見)에 무릎을 친다.

이곳에 있는 식물 자원이 무려 130과 760여 종에, 동물이 포유류(4과 7종)·양서 파충류(8과 11종)·조류(24과 45종)·곤충류(107과 436종)에 이른다. 한마디로 한라산에 넓고 두꺼운 층을 이룬 동·식물이 이 숲으로 새 군락을 이뤘다.

숲 속으로 테마탐방로(4.5㎞), 숫모르숲길(4.2㎞), 숫모르편백숲길(8㎞) 세 개의 숲길이 나 있다. 모처럼의 기회에 숲길을 섭렵했으면 좋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회원 절반 이상이 장애인이라 가급적 동선을 줄여야 한다. 아쉽지만 선별해 가며 몇 군데만 들르기로 했다. 강의하다 오늘처럼 기행에 나선 날엔 휠체어 회원을 밀고 다니는 행보의 의미도 각별하다.

동선 따라 첫 번째 닿은 곳이 테마탐방로다. 첫 대면이 참꽃나무숲. 참꽃나무는 한라산 중턱(해발 1300m)에서 아래로 내리며 뿌리 내린 진달래과 낙엽관목으로 제주도 특산식물이다. 계곡 바위틈이나 돌밭, 그늘진 곳에서도 선홍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척박한 자갈밭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인을 닮았다 해서 제주도 상징으로 지정한 꽃이다. 꽃과 잎이 진 지 오래라 발가벗고 겨울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끝냈다는 듯 묵연한 자태가 외려 평온하다.

단풍나무숲도 현란한 단풍의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나, 이제 지다 남은 마른 잎들이 미풍에 바스락거리고 있다. 질 때 지지 않으면 모질기는 하나, 보는 이에겐 애틋하다.

걸음을 아끼며 이른 수생식물원은 옛 연못을 재현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었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의 야생 물장군, 순채, 삼백초, 전주물꼬리풀을 비롯해 190여 종이 서로 간 균형으로 안정된 생태계의 질서를 이룬다. 습지로 기능이 뛰어난데다 경관을 갖췄으니 생태교육장으로 제격이겠다. 그새 따스해진 햇살이 호면에 내려 반들거린다. 늦가을 한나절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롭다.

길섶으로 허연 억새꽃들이 지나는 바람에 나풀거린다. 옆으로 엇비슷한 갈대들이 늘어서 작은 숲을 이뤘다. “저 안쪽 것은 갈대, 이쪽 것은 억새, 알아요?” 했더니, 활짝 웃는다. 눈 휘둥그레진 두엇은 이제야 알았다 함인가.

한라산 산마루에서 철철 내리는 천연수를 당겨 작은 폭포를 만들더니 냇물로 흐른다. 웅장하진 않으나 숲을 울리는 물소리는 숲에 든 사람의 무심(無心)을 흔들어 깨운다. 때마침 지나던 산바람이 물소리를 만나 뒤섞여 내는 소리는 사람 사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통속을 벗어난 자연의 소리가 아닌가. 맑은 소리에 귀를 씻다 아쉽게 돌아섰다.

일행과 점심 후, 카푸치노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데, 눈앞엔 한라생태숲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제주의 보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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