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상념과 다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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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벌써 1월의 절반 시점이다. 새해의 계획과 다짐들도 이제 진척의 수순에 들었을 터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한 해의 삶도 시작이 중요하다. 어수선한 국내 정국의 질곡을 뚫고, 일촉즉발의 주변 정세도 가까스로 넘어 새해의 시발점에서 우리 모두 다시 나섰다. 크고 작은 인재와 자연 재해의 위기에서도 낙오하지 않고 다들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험난한 세월의 강을 건너 새해를 열어가는 서로에게 위로와 축하의 덕담이라도 건넸는지….

겨울 공원을 거닐며 또 다시 내 생에 오지 않을 2018년의 미로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상념에 잠겨본다.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위난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잊고 사는 게 우리의 인생이고 보면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가벼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의 득과 실을 따지며 노심초사하다보면 좋은 기분도 괜스레 망쳐버린다. 무슨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으며 사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터. 세상이 시끄럽고 문제투성이 같지만 웃음소리도 적잖으니. 그렇다고 인생은 항상 밝고 즐겁다는 말은 아니다. 수라장 같은 세상은 투덜댄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 아래 다스려 나가야하는 게 세상사이고 저마다의 인생이다. 그렇다면 이마에 주름을 새기며 사느니 파안대소로 신명을 돋우며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새해가 되면 저마다 꿈과 소망에 대한 성취를 다짐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면 자칫 신기루 속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결과가 기대치에 닿으면 지금의 과정이 의미가 있지만 결과가 나쁘면 그 과정의 노력도 의미를 잃게 된다.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과정을 음미하며 즐길 여유도 없이 앞만 보며 달리기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살기에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설령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성취감은 잠시, 또 다른 고지를 향해 달려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신기루를 좇듯 목표라는 환영(幻影)을 향해서. 행복은 먼 미래나 거창한 그 무엇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소소한 기쁨을 즐기는 시시한 삶에 묻어있다고들 한다. ‘행복의 기원(2014)’에서도 한 번의 큰 기쁨보다는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게 더 낫다고 응수한다.

새해를 맞는 또 하나의 다짐은 내 안의 오만과 편견을 덜어내는 일이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내가 이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뇌에 입력된다. 따라서 나만이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믿음과 나의 확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저마다 자기 기준으로 세상사를 재단하려 든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치열한 갈등 양상도 이런 사고방식이 초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 한 해도 크고 작은 어려움과 마주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젊은 사람은 젊음 때문에, 나이든 사람은 나이 듦 때문에. 이리 차이고, 저리 뒤틀리며 상처도 받고 분도 삭여야 하리라. 그렇지만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겠다는 각오와 결기만 다진다면 올해의 세월의 강도 무난히 건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힘들어도 내 삶을 사는 것이다. 새해는 저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일이나 취미 활동에 땀 흘리며, 때로는 재충전의 안식도 취하면서. 그러다보면 내 생은 또 다른 새해의 포구에 닿아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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