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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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무술년 신년 기자회견장 청와대 춘추관이 탄성과 웃음으로 활기찼다.

국민소통수석의 멘트가 물꼬를 텄다.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할 것인데, 눈을 마주친 기자에게 질문권이 주어진다.”더니, “나도 눈 맞췄다고 일방적으로 일어나시면 곤란하다. 기자들의 양심을 믿겠다.” 감성 접근이었다. 전엔 없던 일이다.

회견 장면을 인터넷으로 보며 눈 번쩍 띄더니, 다음 순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저요, 저요” 하는 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이 떠올랐고, 문 대통령이 “너” 하며 손으로 가리키는 담임선생님 같아 보였다. 질문한다고 펄펄 뛰는 언론사 기자들도 그렇거니와, 그들을 향해 만면에 가득 웃음 띠고 있는 문 대통령의 얼굴 또한 영락없이 교단에 서 있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그 표정이었다.

웃음은 거의 동시에 감동으로 흘렀다. 이 나라에 이런 기자회견이 있었던가.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목하는 미국식 자유 문답.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역대 어느 때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 언론에서 역대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줄 세우고 있었다. 대부분 각본대로 진행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회견을 밤 10시에 생방송으로 진행해 드라마와 시청률 경쟁을 벌인 파격 말고는.

심지어는 아예 하지 않다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것도 고작 10명 남짓한 기자를 앉혀 놓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쇼에 불과한 것. 물론 질문 순서며 내용까지도 미리 정했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내외에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그보다 부끄러운 일이 있으랴.

기자들의 질문을 극도로 혐오한 대통령도 있었고, 언론과의 불통 끝판왕도 한 차례 겪었다.

한데 이번은 달랐다. “저랑 눈 마주치신 거 맞죠? 대통령님!” 이렇게 눈 맞추고 질문자로 지명 받으려는 언론 간의 경쟁 열기가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지 않은가.

질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을 높이 드는 기자들. 이목을 끌려고 두 팔을 들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인형을 들어 지목 받은 강원일보 기자, “저요” 하자 대통령이 “수호랑 흔든 기자님” 하고 가리킬 정도였다는 것. 질문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외신도 ‘연극이 아닌 진짜!’라며 감탄했다. “어메이징! 워싱턴과 서울은 달랐다.”며.

워싱턴 포스트 지 기자가 회견이 끝난 후 자신의 SNS에 회견 방식의 놀라운 변화를 평가했다. “얼마나 길게 진행됐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무려 75분이 경과했다. 기자회견의 발전에 환영한다. 질문이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저널리스트들은 지난 정부의 간담회 때와 달리 질문을 위해 사전에 선택되지 않았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질문하게 한 포맷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한 것인데도, 백악관과도 달랐다며 이번 기자회견을 높이 띄우는 분위기다.

유력 언론에 쏠렸던 과거완 달리 지역 언론이 질문자로 선정된 것도 가시적 변화로 단연 주목거리다.

이번 대통령의 회견은 비정상의 정상화로 환골탈태다. 오죽 했으면 외신이 “어메이징(Amazing)!”이라 했겠는가. 그냥저냥 한 걸 가지고 그들이 놀랐겠는가. 그들의 눈에도 놀랄 만큼 대단했으니 감탄을 터트렸을 것이다.

현 정부에 대해 여러 시각들이 있다. 적폐를 발본하려는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자유다. 그게 민주주의다. 다만 이번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엄연하면서 별처럼 빛났다.

기자들의 “저요, 저요” 소리가 귓전으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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