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扶助)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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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어릴 적엔 어머니가 상가에 조문할 때 떡(상외떡·빙떡)을 싸들고 갔다. 잔치 집엔 작은 양푼에 산도쌀을 담는 것으로 바뀌었다. 1000원 지폐로 할 때 5000원을 큰 부조로 쳤던 건 오래된 일이다. 이후 만 원이 예사가 되더니 3만 원으로, 5만 원으로 줄곧 오르기를 거듭해 온 게 부조금이다.

요즘엔 경조사 불문, 작게 5만 원인 것 같다. 5만 원 권이 나오면서 부조금이 오르는 요인으로 부추겼을 법하다. 4만 원은 짝수라 그렇고 결국 간편하게 5만 원짜리 한 장으로 가는 식이 됐다.

특히 제주는 연고사회라 부조에 민감하다. 육지 살다 고향에 내려온 사람이 부조로 등 터진다 투덜댈 법하다. 안 하면 체면이 안 서고 꼬박꼬박 하려니 주머니 사정에 한숨이 샌다. 바닥이 좁은 곳이라 언제든 만나게 되는데 하지 않았다 낯 뜨거울 게 마음에 걸리니,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개념으로 말하면 부조금은 일종의 급여다. 원래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재해 또는 순직한 경우에 부조를 위해 지급되는 급여가 부조금이다. 순직 부조금, 보호대상자에게 국가나 지자체가 내어 주는 보호금품도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통념적으로 개인 사이에 경조사가 있을 때 축의금이나 조의금으로 주고받는 돈이니, 이를테면 부조금은 품앗이인 셈이다. 한데 실제는 그리 단순치 않다.

축의금과 조의금이 또 다르다.

결혼식은 식대가 많이 올라 5만 원 미만은 드물 것이다. 호텔 뷔페인 걸 감안하면 3만 원은 그렇다. 현실감이 없다. 더욱이 부부동반일 때는 5만 원도 합당한 게 아닐 터라, 그 이상을 망설이게 되는 것 아닐까.

문상일 때는 밥값이 싸니 낮춰 한다지만, 그보다 덜하면 봉투를 내미는 손이 머쓱하다. 이왕에 할 바엔 제대로 하는 거라며 손이 한 장짜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형편껏 하고 마음으로 축하하거나 위로해 주면 되는데도 우리의 관행이 그걸 용납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축의금을 턱없이 적게 하면 훗날 좋은 소리 듣기는 글러 버린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는 것도 한계다. 이심전심이라 하지만 속마음을 전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장례식에 가서 몸으로 이런저런 도움을 준다는 것도 딴은 군색한 일일 뿐이다. 부조는 확실히 하는 게 제 도리를 다하는 것이란 인식을 떨치지 못한다. 타산적으로 접근하다 돈보다 더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수가 왜 없으랴. 자기가 생각하는 부조금으로 해서 오래 쌓인 정이 산산조각이 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정도에 따라서는 인연이 다한 것으로 등을 돌리기도 할 것이다.

결국 친소(親疎)나 인과 관계에 따라 자신이 결정하는 게 중요하리라. 아낄 게 따로 있다거나, 뭐 이만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뜻이다. 사람 마음이란 미묘한 것이라, 돈 몇 푼에 불과한 하잘것없는 것에 틀어지거나 서운해 할 수 있음을 잘 안다. 마음의 선택에 따를 일이다. 도타운 사이가 부조금이 적다고 해서 흔들린다면 그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살아오며 겪는 일이지만, 부조를 몇 번 했는데도 오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게 세상인심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믿던 부조는 없고, 생각지 않은 새 부조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겨울 한철 결혼 성수기라 봉투 마련하느라 부산 떨 텐데, 내용물을 현명하게 챙기려면 골치가 지근거릴 것이다. 할까 말까 망설인 뒤, 하자 쪽으로 정한 뒤가 또 문제다. 얼마를 담을까. 많으면 좋겠지만, 뒷감당이 어려워 눈 딱 감은 채 손이 가는 데는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제주에 살며 사람 구실하려면 빼도 박도 못하는 게 경조사 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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