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드러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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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언젠가부터 주말을 잘 보내는 일이 큰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올레길을 걷거나 오름을 오르는가 하면 주말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조사에 의하면 주말을 잘 보내는 방법으로 맛있는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필자도 주말에는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그런가하면 친구들과 맛집을 찾기도 한다. 필자는 매운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다 차가운 맥주를 곁들이는 재미야말로 중독 수준이다.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고 나면 세상의 아무리 무거운 고민도 그 순간만은 가볍게 여겨진다. 그런 기분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맛있는 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배를 가득 채우면 뼈가 게을러진다’는 말이 있다. 주말에 맛있는 음식으로 배부르고 나면 하릴없이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뒹굴게 마련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러시아의 소설가 A.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보면 10년 유배생활 동안에 가장 좋았던 일이 우연찮게 얻은 소시지 한 조각을 잠자리에 누워 씹은 것이었다는 처절한 고백이 나온다, 우리의 뱃속에는 육체의 가장 깊은 어둠 즉, 굶주림과 빈곤, 실패가 자리한다. 그런가하면 뼈를 게을리 하는 힘이랄 수 있는 식욕뿐 아니라 성욕, 탐욕, 권력욕 등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어떤 욕망을 향해 치달을지 사뭇 걱정이 된다. ‘배부르니까 하는 짓’이라고 우리가 비꼬는 일이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옛 어른들은 이런 문제를 경계하기 위해 배를 드러내 보였다는 사실이다. 배고프거나 배부른 ‘배’를 경계하기 위해 배를 드러냈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치감이라는 사람이 사윗감을 고르는데 총각들 대부분이 단정한 태도였지만 한 사람만이 배를 드러낸 채 동쪽 창문 밑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치감은 이 예의 없는 총각을 사위로 삼았는데 후일 서성(書聖)이라는 불리게 된 중국 최고의 서예가 왕희지였다. 이를 단복동상(袒服東床)이라고 하며 ‘동쪽 침상에 배를 드러내고 누웠다’고 하여 인생만사를 통달한 경지를 뜻한다. 꺼릴 것이 없으니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다는 의미이다.

제주유배인 추사 김정희는 왕희지를 흠모했고 그 덕분에 추사체를 완성하기도 했다. 또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소동파 역시 “어슬렁어슬렁 산보하면서 배를 두드릴 뿐일세”라고 하면서 배를 드러내면서 유배생활을 했다. 제자 소치가 스승의 제주유배 시절을 그린 초상화인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에도 추사 김정희가 배를 어루만지고 있다.

선비들이 배를 드러내고 걷거나, 길게 누워있는 그림들은 의외로 많다. 이렇게 배를 드러내는 ‘단복(袒服)’은 배부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감각기관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나름의 묘책이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같은 조사에 의하면 주말에 맛있는 것을 찾는 사람들의 특징이 포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포식은 조심해야 한다. 비단 음식만이 아니다. 재산, 권력, 명예 등 모든 포식은 죽음으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야말로 권력의 포식에서 빚어진 것이며 그 결과, 본인은 물론 공동체 모두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포식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포식 방지를 위해 우리도 옛사람들처럼 배를 드러내 보이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서 세상사가 아무리 어렵고 혼탁하더라도, 아무리 유혹적일지라도 아무 꺼릴 것도 없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 주말 만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경계하고 포식을 멀리하여 단복하는 마음으로 보내 보도록 하자. 필자부터 실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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