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화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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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눈빛 명징한 맵시, 동창 백매가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게 2월 초. 설한의 꽃은 치열해 다가가기만 해도 숭엄하다. 해토머리, 폭설 속 개화는 기어이 피워 낸 그 결기가 사뭇 색달랐다.

하긴 매화에 한 발짝 앞서 눈과 얼음을 뚫고 피는 꽃이 있다. 복수초. 1월 어느 날, 눈 속에 피었다는 기별을 들었다. 차디찬 한천 아래 꽃 피워, 복과 장수를 품고 부유와 행복을 상징한다니 얼른 수긍이 간다.

들판 예제 피어나 봄을 맞는 영춘화들이 있다. 노루귀, 흰괭이눈, 변산바람꽃, 꽃기린. 털 보송보송한 갯버들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개나리를 봄맞이꽃으로 보려 한다. 개나리와 영춘화를 등식에서 하나로 보려 함이다. 영춘화가 개나리와 혹사(酷似)한 듯 다르다고는 하나, 개나리를 봄맞이꽃이라 함에는 이견이 없을 테다.

개나리와 연이 닿은 것은 스물여덟 해 전, 읍내로 내려오면서다. 작은 정원을 만들며 문득 녀석이 떠올랐다. 봄의 전령이면서 오래도록 화사하게 피는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돼 있었다.

동네 어귀 두두룩한 곳에 개나리 숲이 있어 쉽게 구했다. 3월초, 가지 몇 개를 잘라다 마당 모퉁이 자갈 틈에 꺾꽂이했다. 습기가 있거나 그늘이 좋은 곳도 아니다. 물 몇 번 준 게 고작인데 새잎이 돋아나 쑥쑥 자랐다. 서너 해가 지나자 성목으로 가지 내어 숲을 이룬다. 놀라운 생장이었다.

새봄을 알리는 노란 황금빛 꽃이 울을 넘어 밖을 기웃거린다. 황금색 꽃빛이 아잇적 시골 마당에 종종대던 토종 병아리보다 더 노랗다.

제주는 따뜻한 곳이라 그 꽃 시절이 길다. 이를 때는 2월부터 피기 시작해 5월까지 간다. 수없이 노란 지등(紙燈)을 달아 놓은 듯 마당귀를 밝히니 꽃 없는 집이 과분한 호사를 누린다. 꽃빛만이 아니다. 무덕무덕 모여 피니 더욱 눈이 부시다. 낮은 곳에서는 위로, 높은 곳에서는 아래로 자라는 유연한 수세 또한 눈길을 붙든다.

물푸레나무 목·과·속에 딸린 낙엽활엽관목, 개나리. 번식력이 강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질긴 근성의 나무다. 공해도 모르고 병충해와 내한성이 강해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가지를 잘라 땅에 꽂거나 휘묻이하거나 포기를 나눠 심어도 된다. 가지가 땅에 닿기만 하면 백발백중 뿌리 내리는 나무다. 하루 다르게 자라는 속성수라 놀라운 생명력에 혀를 차게 한다.

흠이라면 향기가 없는 것. 하기야 한다하는 동백도 향기가 없다. 꽃의 여왕 장미도 향이 맵싸한 걸 보면 꽃이 하도 고와 향이 없거나 매운 건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개나리를 온 섬에 심었으면 하는 꿈을 꿔 온다. 길섶에, 마을 쉼터에, 골목에, 동산 언저리에, 해안도로에, 공원 모퉁이에. 산기슭 비탈진 자드락에, 깊은 골짝에. 어디든 발길 닿고 손 가는 곳이면 된다.

봄에 섬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과 어우러질 조화 무비(無比)야말로 환상적일 터. 동서로 서귀포에 이르는 일주도로 길가와 화단에 철철이 꽃을 갈아 심는 노역에 예산도 만만찮아 보인다. 어디든 심으면 잘 크는 나무, 봄 한철 개나리로 섬을 노랗게 색칠해 놓으면 어떨는지. 그런다면, 섬을 찾는 이들이 노란 수채화 속으로 빨려들어 덤으로 낭만을 즐기게 되리라. 척박한 곳도 마다않는 번식과 성장의 생리를 염두에 두면 해볼 만한 기획이란 생각이다.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 기대, 깊은 정, 달성’이다. 샛노란 색이라 꽃에 따스함과 용서의 함의(含意)가 있다. 일상의 삶 속에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 하루하루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테다.

해마다 어김없이 오는 봄, 영춘화 개나리로 노랗게 물든 섬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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