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번 버스 기사님
341번 버스 기사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나는 한 번도 핸들을 잡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야장천 버스를 탄다. 몇 번 면허를 딸까 망설이다 관뒀다. 버스로도 크게 힘들지 않아 손을 내려 버렸다.

허구한 날 버스만 탔다면 거짓이다. 남 신세를 지면서 그때마다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큰 허물없이 그냥저냥 지내 왔다.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고마움도 마음속에 재어 놨다. 사람이란 서로 간 그런저런 연으로 엮여 산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키면 은연중 흐뭇해 웃음이 나오곤 하는 게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이다.

버스를 타면 눈이 차창 밖에 가 있다. 굽이치는 창망한 바다의 물굽이를 옆구리에 끼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내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나날이 변해 가는 디자인 너머 진화하는 도시의 민낯, 난전에 나앉은 노파의 고단한 하루, 잠시 머뭇거리다 가는 바람에 깨어나는 가로수의 하늘거림….

대중교통체제 개편으로 다소 불편을 겪었지만 이젠 익숙하다. 오래 버스를 타 왔으니 잘 안다. 이전 못잖다. 헷갈리다 길들었고, 길 깊숙이 파고드니 교통이 섬세해진 게 맞다.

노인교통복지카드가 나와 정류소로 가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말로 듣던 복지를 실감한다. 이참에 교통문화가 한 켜 진보했으면 좋겠다. 버스를 이용하는 손님과 운전기사 사이에 인사를 나누면 얼마나 정겨울까.

나는 버스에 오를 때마다 매번 기사님에게 “수고하십니다.”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러면 “예.”라거나 “안녕하세요?”라 상큼하게 인사를 받는 분도 있으나, 대부분이 무반응이다. 당국이 소양교육을 하고 있을 텐데, 아쉽다. 제주는 이제 세계적인 관광 명소다. 버스에서 인사가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3월 23일 날, 연일 꽃샘 뒤 날씨가 좋아 선산에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게 됐다. “수고하십니다.” 기사님에게 인사를 건네 자리에 앉는데, 아내가 복지카드를 태그하고는 지폐를 꺼내며 내게 눈짓을 보낸다. 내가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왔잖은가. 30년 운전 경력에 어쩌다 버스를 탄 아내, 요금을 정확히 모르는 눈치다. “1200원.” 하자 지갑에서 지폐 두세 장을 꺼내 놓고 멀뚱거리고 있다.

그때다. 낌새를 알아차린 기사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 “놔두세요. 그냥 됐습니다.” “예? 차비를 내야하는데….” 내가 한마디 거들자, 기사님이 활짝 웃으며, “앞으로 카드를 목에다 걸고 다닙써.”라 한다. 우스갯소리다. 기사님의 뜻이 하도 단호하매 꺼냈던 지폐를 도로 지갑에 넣는 아내.

꽃샘 뒤라선지 버스 안에 내려앉은 햇살이 다사롭다. 선산에 성묘했더니 그사이 조상님 음덕이 버스에까지 따라온 걸까. 함덕-제주대 노선의 341번 버스다.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는 걸 가까스로 이름을 알아냈다. 산에 다녀온다고 허름한 차림인데도 사람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으니, 나도 무심할 수 없어 이름을 밝힌다. 임재훈 기사님(51). 언젠가 지갑을 깜빡하고 버스를 탔다 사정 얘길 하는데도 시큰둥하게 내뱉던 기사의 말이 떠올랐다. “내립써.”

차를 공으로 태워 줘서가 아니다. 복지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라’ 한 기사님의 그 말 한마디가 참 따뜻하잖은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