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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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어허야 디야, 어허야 디야. 여름날 동살 틀 무렵, 멸치 후리는 소리에 마을이 깨었다. 바다로 내닫던 동네사람들. 팔딱거리는 멸치 한 됫박 얻고 와선 우영엣 배춧잎 몇 장 뜯어다 멜국을 끓였다. 참 맛깔났다. 그것에 보리밥 말아 먹고 검질 매러 먼 조밭으로 잰걸음이던 어머니와 손위 누나.

멸치가 100고리 넘는 날엔 값을 싸게 쳤다. 어머니는 때를 놓칠라 몇 구덕 사다 작은 동이 너덧에 젓을 담갔다. 때론 각재기 고도리 젓도 담갔다. 그게 다섯 식구 한 해 밑반찬이 됐다. 벌겋게 익어 가며 젓갈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숟가락에 젓갈 하나 떡 걸치면 입안에서 녹던 보리밥 조밥, 소년의 입맛을 돋워 주던 그 맛이 생각난다.

‘불배’라고 했다. 테우 타고 맬 몰던 마을 어장을 낮처럼 불 켜 삽시에 휘젓던 발동선. 어화(漁火) 밝히고 멸치를 사그리 잡아갔다. 씨도 남기지 않고 훑었다. 뒤로 마을에서 멸치 어장이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게 끝이다. 고향마을에 멸치 후리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불배에 어장을 몽땅 털리고 만 것이다. 망연자실, 뒷손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던 고향 어른들의 뒷모습이 슬펐다.

오랜 만에 갔다. 나고 자란 가난한 동네가 타향처럼 낯설다. 6·25때 이북서 피난 와 억척스레 살며 일궈낸 안 씨네 상점이 안 보인다. 허름하던 집이 헐리고 거기 슬래브 건물이 들어섰다. 듣기에 거북한 무슨 게스트하우스. 억양이 귀 거슬리는 손님 서넛, 동네 옛 주민인 내가 외방인으로 보였는지 꺼벙한 눈으로 쳐다본다. 이런 혼재와 공존을 싫어해선 안되는데, 오래된 고유와 순수가 짓밟힐 것만 같은 기우에 어질어질 어지럼증을 탄다.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쳐다보는 눈빛이 생뚱맞아 슬프다.

구좌읍 세화리 15번지, 고고성에 한순간 지축이 흔들렸을 법한 생가가 자장(磁場)처럼 나를 끌어들인다. 골목 입구에서 깜짝 놀란다. 돌담이 어깨 높이로 사람을 막아선다. ㄱ 자로 꺾여 들어간 긴 골목엔 한 집같이 정겹던 다섯 가구가 온데간데없다. 띄엄띄엄 늘어섰던 초가집이며 울타리가 허물려 유허(遺墟)의 흔적조차 없잖은가. 자치기 땅 뺏기 제기차기로 한바탕 어우러지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웃음도 표정도 말소리도 떠나 버렸다. 내 유년의 집터에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세월을 되새김질하던 오랜 적요가 나를 충분히 슬프게 했다.

동네 삼촌 한 분을 만났다. “아이고 이게 누게고? …알아지큰게, 오랜만이여 이?”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등 굽고 말 어눌한데 백태 낀 흐린 눈이 회상 너머 안개를 걷어 내다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느덧 구순 문턱이려니. 고샅에 꾸부정하게 덩치 키우며 그늘을 만든 팽나무 아래 앉아 몇 마디 주고받는 말이 속절없이 겉돈다. 여러 어른들, 세상 떠나고 보이지 않는다. 해 서산마루인데, 한 어르신과의 해후가 마냥 슬픈 저녁.

회상 속으로 투사한다. 시내에 살면서 제삿날 어린 두 아들 데리고 내려가면, 걔들 품고 동네방네 돌며 자랑자랑하시던 선친은 오래전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다. 그 아이들 이제 50줄에 올라섰다. 유복자로 그토록 손(孫)을 아끼던 당신, 혈육들 두고 어떻게 눈 감으셨을꼬. 나이 듦인지, 당신의 그 고적했던 생애가 한없이 슬프다.

하지만 슬픔을 삭이면 뒤로 샘물 같은 기쁨이 솟는다. 삭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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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리 2018-07-23 14:26:22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우리들의 작문 주제이기도 하였습니다.
제주의 너무 빠른 변화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요즘, 골목길을 들어서며 높아진 돌담벽에 절망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