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딛고 춤을 출 수 있도록
절망을 딛고 춤을 출 수 있도록
  • 제주신보
  • 승인 201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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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SNS에 ‘자해’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몸에 직접 상처를 입히고 그 인증 샷을 올리는 것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이 사실을 알고 인스타그램(Instagram)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해한 손목 사진 등을 올려, 주변 사람들에게 인증하는 게시물만 수백 개가 넘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자해 스왜그(Swag)’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자해를 하면 멋있다는 뜻인데 문제는 단순히 ‘멋있다’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자해까지 이어지고, 그것을 SNS에 자랑거리로 올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해한 사진 만이 아니라 자해하기 위해 물건을 날카롭게 만드는 방법까지도 공유함으로써 자해를 부추기고 심지어 경쟁하는 분위기마저 연출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해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큰 원인입니다. 한국의 교육제도 아래 청소년들에게 ‘공부’는 ‘빚’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빚에 시달리는 채무자 신세이고 부모와 교사는 채권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다리를 뻗고 편히 누울 자리가 없습니다. 학교도, 학원도 심지어 집마저도 그들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들끼리 모여 스스로를 해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에게 ‘누울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합니다.

콜롬비아에는 전쟁으로 갈가리 찢긴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타인과 호흡하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가 있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절망을 딛고 춤을 춰라’라는 취지 아래 예술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런 새로운 기회, 새로운 교육 덕분에 청소년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새로운 기회를 꿈꾼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1829년 40세 되던 순조가 재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벌인 잔치의 보고서인 『순조기축진찬의궤(純朝己丑進饌儀軌)』를 보면 무고(舞鼓)라는 북 1개를 가운데 두고 4인의 원무가 긴 북채로 북을 치며 춤을 추면, 4인 또는 8인의 협무가 그 주위를 돌면서 원무와 조화를 이루면서 춤을 추는 멋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춤은 고려 충렬왕 때 이혼(李混)이 경북 영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창작한 것입니다. 이혼은 바닷가의 뗏목으로 북을 만들어 그것을 무고(舞鼓)라 하였고, 이 북을 두드리면서 추는 춤도 창작하였는데 이 역시 무고라고 했습니다. 북소리는 웅장하고, 춤은 한 쌍의 나비가 꽃을 감돌며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유배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혼은 북과 춤을 만들며 새로운 기회,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자기 학교로부터, 자기 가정으로부터 유배된 사람들입니다. 자해 행위는 그들의 외롭고 힘든 유배생활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시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절망을 딛고 춤을 출 수 있도록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교육,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의 자해는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자해보다 더 끔찍한 일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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