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장례
  • 제주일보
  • 승인 2018.07.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효성.명상가

영혼은 이제 죽음을 보고있다. 미련과 아쉬움이 남지만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한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심정이다. 기쁘고 좋은날은 자랑이 넘쳐지고 행복꽃이 피어 걸음에 기운이 넘쳐나지만 고단하고 피곤했다면 처진 어깨로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푸념만 늘어지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부터 남아 있는 이들의 슬픈 눈물 애뜻한 이별이다. 위로를 나눌 수 없지만 침착함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의 임종 선언이 있고 육체는 자연이 되어간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지만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그리웠던 얼굴들은 반가움보다는 미안함이 먼저온다. 부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배움에 재미가 붙어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으며 탈없이 성장해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수줍은 소녀시절 흠모하던 이와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아들과 딸을 두 명씩 슬하에 두었다. 공무원인 남편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늘 이방인이었으나 가장이라는 책임에서 소홀함이 없었다. 목소리 높이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버릇처럼 전원생활을 꿈꾸는 시 짓는 멋쟁이었다. 자녀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짝을 찾아 결혼할 때는 며칠 밤을 잠 못이루며 뒤척이는 여린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몇해 전 몹쓸병을 앓아 먼저 보낼때도 후회보다는 ‘잘 살았다. 고생했다’ 다음 만남을 빌어보기도 했다. 장례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첫째는, 아버지는 본인 뜻대로 화장을 했으나 어머니만큼은 매장을 해야 한다는 고집이요, 작은 녀석과 누이 동생들은 후에 묘지 관리를 누가하냐며 수목장을 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화합하고 우애를 나누는 모습을 원하지만 이 또한 욕심이 아닌가하는 상실감이 든다. 평소 대인관계를 과시하던 큰사위의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허세가 아니었구나’ 잠시 미소가 지어진다.

흥겨운 잔치는 아니지만 피할수 없기에 위안이 될 수 있다. 연신 줄을 지어 들어오는 조화에 호기심이 생겨 몇 개인지 세어보는 철부지 같은 재미를 가져보기도 한다. 분주하게 음식을 접대하는 아주머니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복잡하고 수고로운 절차가 끝나고 정산을 하면서 적지 않은 금액이 남아 분배할까 하다가 요즘 장사가 안된다는 막내에게 전부 주기로 합의 했단다. 새삼 고맙고 대견하다.

이제 떠나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