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소회(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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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선친께선 살아생전 늘 외로워했다. 그도 그럴 게 유복자로 태어나 곁에 피붙이가 없었다. 내겐 고모도 백·숙부도 없다. 그러니 재종도 없다. 남들처럼 혈연이 부러웠다. 성년이 돼 고대소설 『구운몽』에서 작가 김만중이 유복자란 걸 알았다. 숙종 조에 그가 정쟁에 휘말려 유배되자, 유복자인 자신을 걱정하고 계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 했다. 인생사를 허황한 한바탕의 꿈에 빗댄 게 『구운몽』이다. 유복자의 뜻을 알면서 뼛속에 고적감이 고여 갔다.

선친께선 당신과 동항(同行) 육촌이 다들 너덧 형제인 게 샘났던 것 같다. 집안일로 술 한잔하다 다툼이 생길 때면 으레 ‘너희는 형제가 있어 좋겠다.’며 탄식하곤 했다. 내가 장가들자 며느리에게 이른 첫 마디가 “더도 덜도 말고 아들 셋만 낳아라.”였다.

1960년대는 한 집에 아이 서넛은 흔했다. 아들지상주의가 관념화한 때라 아들을 낳을 때까지 끝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딸 여섯 낳은 뒤에도, 아들을 보아야 더덩실 춤을 췄으니까.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7공주’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변화의 물결이 출렁였다. 자녀를 덜 낳아라 표어까지 나왔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운이 맞아 떨어지고 메시지도 강했다. 나는 순진했다. 설득대로 두 말 않고 따르기로 작심한 것,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아들 둘을 두어 뿌듯했다.

가족계획정책이 그렇게 흐른다 싶더니 인구 급감이 가시화되며 큰 걱정거리를 안게 됐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쪽으로 기울지 않는가. 둘에서 하나는커녕 출산 자체를 포기하려는 흐름이다.

현재 출산율이 1.05로 역대 최저치다. 향후 출산율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2100년 한국의 인구가 2476명이라는 통계다. 지금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단순한 가정일까. 그냥 일이 아니다. 인구 격감은 분명 나라의 기반을 밑동에서 뒤흔든다.

젊은이들 출산에 대한 거부 반응이 만만찮다. ‘밴 땐 한 시름, 날 땐 열 시름’이라 한다. 육아가 쉽지 않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 하고, 하더라도 자녀를 두지 않는단다. 이게 어디 그냥 일인가. 곧잘 저녁이 있는 삶을 얘기한다. 그런 삶 속엔 퇴근할 때 문밖에 나와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다. 아니다. 아이의 웃음이 아닌, ‘아이들의 웃음’이라야 한다. 거기, 인간이 누리는 가장 보편적인 행복이 깃들고 인생의 가치실현이 있다.

세상이 변했다 하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구도나 존재방식이 달라진 건 아니다. 돈과 직장을 문제로 들먹이나 제한적이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진다. 찾으면 일할 시·공간도 있다.

장성한 두 아들이 눈을 반짝이며 제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 아버지 그 봉급 가지고 어떻게 우리를 키우고 대학까지 육지로 보냈어요?” 딴은 새삼스럽게 들렸을 것이다. “그게 우리만이냐? 그럭저럭 되더라.” 웃음 속에 세월의 무게는 감추고 있었다.

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의 글(제주新보 ‘춘하추동’, 2018.7.11.) 말미에서 말한 그의 육성에 공감한다. “근본적인 답은 청년 개개인이 아이를 낳고 키우려는 의욕이다. 사람은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 젊은이들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따라야 하겠고, 멀게는 나라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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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2018-07-27 18:40:14
80년대 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아이들이 놀고, 동네 어귀에 모인 어른들이 계셔서 서로 봐주는 게 되었지만, 요즘은 동네에서 노는 아이도 없고 이웃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지요. 사건사고가 바로 이웃집 사람 때문에 나기도 하는 세상이니.